14년차 직장인의 영국 석사 준비기-1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계기

by 글쓰기C쁠
행운장수!

대학원을 처음 생각해 본 건 2010년 1학기였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영어 강의 혹은 영어 관련 한국어 강의로만 21학점을 꽉 채워 듣던 때였다. 한 전공필수 수업에서 교수님이 가끔 질문을 하셨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내가 대답을 곧잘 하던 것을 좋게 봐주셨는지, 대학원에 갈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었다. 그때 대학원이라는 옵션을 인지하게 됐다.


같은 해 2학기, 또 다른 전공 수업에서 논문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그와 유사한 형태의 분석 보고서를 영어로 쓴 적이 있다. 과거 논문을 찾아보고, 나만의 분석 틀을 만들어서, 증거를 기반으로 주장을 펼쳐나갔던 게 참 재미있었고, 학점도 그에 합당한 점수를 받았다. 이 무렵 대학원에 가는 것도 어쩌면 나에게 맞겠다, 언젠가 한 번 가봐야겠다는 씨앗이 마음에 심어졌다.


다만, 나에겐 중학생부터 가슴에 품었던 꿈이 있었기에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당시로서 고려할 가치가 없는 선택지였다. 2011년 1학기는 휴학하고 외국 기관에서 인턴을 했고 그해 여름에는 한국 기관에서 또 인턴을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복학해 6학점만 수강하며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중 지금 다니는 직장에 합격해 만 22세에 사회에 발을 들였다.


입사 후에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했다.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반성하고, 자책하며 오늘의 나로 성장했다. 뜻밖의 부서에 배치가 됐어도, 늘 배우는 자세로 일하며 경험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 배울 게 많은 사람은 언제나 주변에 있었다.


그러다 만 30세,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저절로 기회가 찾아온 건 아니고, 내가 그 기회를 찾아갔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내가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을 아무도 설명해 준 적은 없다. 고등학생 때부터 배운 외국어의 공인 점수가 있었고 다양한 부서를 오가며 경력을 쌓았다는 점 등이, 주로 연차가 높은 사람들이 꿰차는 자리에 갈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라 막연히 추정할 뿐.


3년간 외국에 살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유럽에서 석사 학위는 기본으로 여겨지다 보니, 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외국에서 근무하는 게 이 조직에서 내가 목표로 삼았던 바이다 보니, 여기서 더는 할 게 없다고 심드렁해졌달까.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됐다. 하지만 뭘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또렷하지가 않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생각했던 게 대학원이나 갈까, 로스쿨이나 갈까였다. 3년 차 때는 로스쿨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점수가 나쁘지 않아서 시험을 준비해볼까 했으나 평일에 소같이 일하는데, 주말마저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귀국 후 10여 년 만에 다시 로스쿨 문제집을 사서 풀어봤는데, 점수의 고저는 차치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문제를 풀 수 조차 없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다 AI 전략을 고민하는 부서로 오게 됐다. 이 부서에 지망한 이유는 단순했다. 세상 모두가 AI를 입에 달고 사는데, 그게 뭔지 나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내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고 싶지는 않고, 이게 일이 돼버리면 자연스레 공부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고과정을 거친 결과였다. 실제로 정말 많은 것을 알게됐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마저 생겨났다.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타입이라, 항상 뭐라도 해야 한다. 그게 운동이 됐든, 공부가 됐든간에. 귀국 직후에는 프랑스어 점수를 더 높은 레벨로 다시 땄다. 그 다음에는 영어 시험을 봐야겠다 하고 IELTS를 쳤는데 점수가 나쁘지 않았다. 이제 영국 대학원에 지원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서 부탁하기 번거롭다, 영어로 SOP 쓰기 힘들다는 핑계 뒤에 더는 숨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2025년 가을 본격적으로 영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게 됐다. 영국을 택한 것은, meant to be라는 느낌이 강하다. 일단 석사 과정이 1년이라 회사에 휴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 영국 정부 장학금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또 미국, 프랑스에서 살아본 만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중 자유진영에 해당하는 3개국 모두에 살아보고 싶다는 이상한 도장 깨기 정신도 발현됐다.


타임라인을 정리해 보면 2025년 10월 영국 정부 장학생에 지원했고, 2026년 1월 5일과 1월 27일에 각각 두 개의 대학에 지원했다. 1월 초에 지망한 학교는 2지망이었는데 SOP와 함께 Written Work, 그리고 추천서를 3장이나 받아야 했다. 1지망 대학원 지원서에 투입한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주객이 전도됐지만, 그 과정에서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결과는 1지망 합격, 2지망 불합격.


영국 정부 장학생 면접은 2지망 탈락 발표(2026년 3월 20일)와 1지망 합격 발표(2026년 4월 10일) 사이에 이뤄져 심정적으로 불안했다. 면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대비해 답변을 준비해 갔지만, 아무런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면접에 들어가기 전, 혹시 지망한 대학에 변경이 있냐는 질문이 전부였을 뿐. 아, 허무한듸! 면접 결과는 6월에야 나온다. 또다시 인고의 시간이다.


어제, 회사에서 가까운 사람에게 대학원 합격 소식을 전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낼 의도는 없었으나, 인사철이 다가오면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하다 보니 알리는 게 맞겠다 싶었다. 휴직을 신청할 건데, 반려된다면 퇴사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봤다. 입사한 이래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처음으로 그 단어에 무게가 실리니 내 마음도 싱숭생숭해졌다.


그 마음을 조금 진정시켜볼까 싶어 브런치에 소회를 글로 정리해 봤다.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원동력,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곱씹어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앞둔 불안한 나에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스스로 해주고 싶었나 보다. 주절주절 쓰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져 제목에 넘버링을 붙여봤다. 앞으로 내가 쓸 글에도 에너지가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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