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인생 16년 만에 러닝화 구매한 후기
때는 바야흐로 2025년 11월. 5개월 정도 기다린 끝에 양재 런너스클럽에 다녀왔다. 달리는 패턴, 발 모양과 크기, 발의 중심 등을 정밀하게 확인하고 내 발에 맞는 러닝화를 추천해 준다. 처음 예약할 때만 해도 지나치게 오래 기다려야 하기에 이게 맞아? 하는 회의감이 들었지만 해보니 그게 맞다. 무엇보다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셨다. 같은 질문을 수천번 들으셨을 텐데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내색 없이 하나하나 답해주셨다. 신발 팔려면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놀랍게도 세상에는 기본도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 매장을 추천하는 글은 아니고, 1시간 남짓 내 발에 관해 알아가면서 깨닫게 된 바를 정리하는 글이다. 측정 결과 내 왼쪽발은 246mm 오른쪽발은 243mm였다. 발육이 멈추고 나서, 아니 성장하는 와중에도 나는 발 길이를 이렇게까지 정확히 재본적이 없다. 그간 가게에서 신발을 신어보고, 아르바이트생의 전문성에 의지해 이 사이즈가 내게 맞다, 안 맞다를 정해왔다. 난 대외적으로 신발 사이즈를 240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신발이 작다 싶으면 245로 갈 때도 있지만 250을 사는 건 뭔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내 발이 이렇게 크다고?!
내가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에는 모름지기 여자라면 발이 작아야 한다! 에헴!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사실 그런 분위긴 없었는데, 나 혼자 발이 250이라고 하면 주변 친구들이 키는 작은데 발이 크다고 놀릴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건 아닐까 싶다. 분명 그런 소리를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겠지. 그리고 그 한마디가 나를 잔뜩 움츠러들게 만들었겠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누가, 언제, 어디서 그 말을 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모두 증발됐다. 그 말이 남기고 간 흉터만 남아있나 보다.
경험상 키에 비해 발이 크다느니, 머리 가르마가 두 개라 시집 두 번 가겠다느니와 같은 하나마나한 말은 청소년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일종의 콤플렉스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갈 때마다 들었던 '가르마 두 개 타령'은 학생일 때 일찌감치 극복했다. 미용사가 가르마가 두 개네요~ 하면 내가 먼저 그러게요 시집 두 번 가나 봐요! 하고 선수칠만큼 신경을 안 쓰게 됐는데, 발사이즈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신발을 250은 신어야 되는구나 인정하게 됐다.
사설이 길었는데, 내가 최종 선택한 신발은 On의 클라우드 플로우 5다. 검사 결과, 중립 발목에 무게 중심이 뒤에 실려있는 나에게 사장님은 온과 함께 브룩스 신발도 추천해 주셨다. 브룩스 러닝화는 마치 구름 위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퐁신퐁신해서 발이 말 편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 튕겨 나오는 느낌이 너무 강해 약간의 거부감도 들었다. 2009년 미국 돼지 시절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무려 16년 만에 제대로 된 러닝화를 갖추게 됐다. 이 또한 참 오래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