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그동안 휴면 전환됐던 계정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메일이 착착 쌓였다. 그 덕에 개인 메일함을 오랜만에 정리하면서 안 쓰는 계정들을 하나하나 지우고 있다. 그중 하나가 비트윈이라는 커플 메신저였다. 이따금씩 이 앱을 깔아서 추억의 흔적을 톺아보며 아련아련 열매를 입에 머금은 채로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던 때가 있었다. 망각의 무덤 아래 완전히 묻어놨던 이 앱에서도 탈퇴하려고 했더니, 일단 로그인을 해서 관계를 먼저 끊으라고 하더라.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비트윈에 로그인을 했다.
연애를 시작한 날, 나의 생일과 상대의 생일 같은 기념일들. 함께 찍었던 여러 장의 사진들과 거기에 달린 댓글들. 그리고 채팅방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돌아오지 않는 옛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예전에는 이걸 보고 나면 애틋했던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났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마지막에 주고받은 대화들을 곱씹어보니내가 내뱉었던 말들에서 짜증과 신경질이 뚝뚝 묻어났다. 그럼에도 상대의 답변에서는 다정함이 읽혀서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의 내 감정이 이렇게나 날카로웠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왜 그 시절을 그리워했던건가 싶을 정도였다. 너도 이런 나를 상대하느라 힘들었겠구나, 찰나의 감상에 마침표를 찍고 설정에 들어가 관계 끊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 끊어진 관계를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이라는 안내문이 떴다. 당신이 한 달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영영 파탄 났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건 그저 데이터 저장 비용을 아껴보고자 하는 기업의 생존방식일까.
계정 삭제와 동시에 휘발될 거라 믿었던 감정의 잔해가 마음속에 눌어붙었는지 잠에 들기 전에 문득 내가 그때 쏟아냈던 말들이 마음속에뭉게뭉게 피어났다.여전히 가끔씩 문자로 (주로 남자친구에게) 짜증을 부리는 내가 얼마나 못나 보일까 싶어 수치스러운 마음에 가슴 한 구석이 간지러웠다. 이런 못난 모습들은 이렇게 타자기를 두드리면서 모두 소각되기를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