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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C쁠 Feb 07. 2024

넌 몇 동에 사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20년 이상을 분당에 살았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이 어디 사냐고 물을 때 나는 성남이라고 답하곤 했다. 분당이라고 하면, 많은 경우에 분당 어디?라고 추가 질문이 따라왔고, ○○동이라고 하면 "오~ 좋은데 사네"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게 꺼려졌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내가 성남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 성남 어디? 냐고 묻지 않는 것이다. 혹시 분당?이라고 묻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는데, 그렇다고 하아니 그럼 분당에 산다고 해야지 왜 성남에 산다고 하냐는 핀잔이 돌아왔다.아니 저기요, 성남시 분당구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묘한 데서 삐딱선을 타는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의 어디 사느냐는 질문이 상당히 불편했다. 불편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불편해하기 시작했는지 근원을 더듬어봤다. 시작은 아마도 초등학생 때인 듯 하다. 내가 처음 살던 곳은 마을. 아파트는 7개 동이 있었는데 동마다 평수가 달랐다. 내가 살던 동은 38평으로 평수가 가장 작다. 당시 인형도, 장난감도 거의 없우리 집보다는 주로 친구들 집에서 노는 게 더 잦았고, 그때 친구 엄마들에게서 너는 몇 동에 사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러면서 그 어린 나이에 몇 동에 사는지가 중요하구나 생각하기 시작했나 보다.

어떤 동은 40평대였고, 어떤 동은 60평이 넘었다. 이런 집에 사는 친구들 집에는 항상 인형, 장난감이 많았다. 보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았던 한 친구의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였다. 컴퓨터방에 있는 해골을 보고 알게 됐다. 이 친구의 어머니는 내 친구와 동생에게 늘 공부를 시켰다. 학원도 많이 다녔는데 그 와중에 나랑 논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친구의 어머니는 내가 은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고 차별한 적이 없다. 다만 여러 어머니들의 반복된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참고로 부모님이 1995년 1억에 구매했다던 이 아파트는 최근 17억에 거래됐단다. 내가 살았던 바로 그 동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동 신축 주상복합으로 이사를 갔고, 고등학교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조금 먼 곳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 고등학교에는 분당에서 통학하 애들이 많았다. 전체 스쿨버스가 몇 대 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분당을 도는 버스가 최소 5 됐을테다. 45인승이라고 치면 200이상을 나를 수 있는 규모다. 이따금 친구 어머니의 차를 얻어 때가 있었다. 이때 내가 사파트 이름을 고나면 아줌마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어른들은 어디에 사는지 따지기를 좋아하는나, 그간 막연하게 품었던 감정이 확신으로 변하는 계기가 됐.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나에게 너는 크면 어디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요즘은 강남에 사는 게 권력이고, 강남 아파트가 당첨되면 로또라고 이야기하는 시대다. 강남보다는 강북을 좋아하는 나는 마포, 서대문, 종로 입성을 꿈꿔왔다. 물론 나의 작고 귀여운 청약 점수로는 절대 강남에도, 마포에도 아파트가 당첨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비싼 돈을 내고 구축에 살자니 마음이 어째 움직이지 않는다. 항상 신축 아파트를 선택는 엄마를 보면서 나 또한 새 아파트에 살고싶다는 생각 자연스레 하게 됐나 보다.


타국에서 3년간 생활하고 돌아와보니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귀국하자마자 매주 주말 엄마를 데리고 서대문구, 마포구, 종로구를 헤집고 다녔으나, 내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 중에는 10년 내 지어진 신축은 당연히 없고, 은행과 집을 공유한다는 전제로 구축을 사야만 했다. 그리고 그 구축은 도대체 내가 왜 이 돈을 내고 사하지 싶은 수준었다. 빚은 내기 싫고, 구축에 살기는 더 싫으니 진퇴양난다! 그러던 와중에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니 나에게도 어쭙잖은 기회가 생겼다. 결국 빚을 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실 이걸 회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의문이지만, 어쨌든 서울에 두 발 뻗고 잘 내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지 않나, 하고 정신승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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