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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C쁠 Mar 09. 2024

광화문의 에비앙남

2021년 5월 Dune du Pilat에 꽂아놓은 에비앙



2018년~2019년 사이 어드멘가,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난다온 세상이 떠들썩하던 시절이었다. 늦봄이었는지, 초여름이었는지 연보라색 장미가 그려진 얇은 7부 블라우스에 튤립 모양의 밝은 회색 치마를 입고, 깔맞춤이라도 하듯 연보라색의 스웨이드 소재 미듐힐을 신은 날이었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착장이다. 


거나하게 취한 친구를 택시에 구겨 넣어 보내고, 광화문에서 집까지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 일단 정류장에 앉아서 쉬자는 생각에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딸꾹질을 하면서. 얼핏 어떤 시선이 느껴졌는데 술기운에 신경 쓸 겨를 없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 도로 중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멈추지 않는 딸꾹질과 싸우고 있을 때였다. 옆에 누군가 앉는 기척이 느껴졌고 잠시 후 뭔가 쓰윽 얼굴 앞에 나타났다. 작은 에비앙었다. 뭐지? 하고 고개를 돌려얼굴이 가무잡잡한 남자가 이거 드실래요? 한다. 


5년 묵은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남자의 얼굴과 옷차림이 기억 속에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다. 빨간색 체크 남방단추를 잠그지 않았고, 소매는 접혀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때면 르는 사람이 주는 걸 덥석 받아먹으면 어떡하냐고 혼났지만, 그는 무해해 보. 와, 고맙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받았다. (참고로 뚜껑은 닫혀 있었다. 이렇게 항변하면 요샌 주사기로도 뭐든 넣을 수 있다며 또 혼나곤 했다.) 그 물을 마시고 나니 희한하게도 딸꾹질이 멈췄다. 평소 리액션이 큰 나는 알코올 부스터까지 장착한 터라 격한 반응을 보였다. 와! 진짜 신기해요!! 감사합니다!!! 문득 가방 속에 낮에 받은 쿠키가 있다는 게 생각나서 이거 드실래요? 고마워서요!! 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애초에 술도 깨고 소화도 시킬 겸 걸어갈까 고민하던 나는 여러 대의 버스보냈다. 남자가 몇 번 버스를 타느냐고 물었다. 물은 덥석 받아마셨어도 경계심은  남있었는지 걸어갈 생각이라  했다. 그럼 혹시 같이 걸어가도 되겠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호라? 포기하지 않네? 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중 혹시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할 수 있냐고 묻다. 시계도 차지 않은 손목을 툭툭 치면서 이 시간에 카페인이 들어가면 잠이 오겠냐고 핀잔을 줬다. 시곗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만약 커피가 아니라 맥주 한 잔 하자고 했으면 나의 대답이 달라졌을까? 


당시 집은 광화문에서 도보로 30 정도 거리에 있었다. 집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며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말을 거는 남자의 전형적인 패턴 '원래 이런 짓을 절대 못하는데 오늘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맥주를 마기분이 좋아 용기를 냈다'고 했다. 친구들과 회사를 관두고 치킨집을 같이 하자고 의기투합을 했다나. 대화가 재밌었는지 집에 도착할 무렵이 되니 문득 이 남자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술집에서 맥주 한잔 하겠냐물었다. 대신, 집이 코 앞인데 신발만 갈아 신고 오겠다. 하루종일 힐을 신고 있더니 발이 퉁퉁 부있었고, 신발을 벗고 싶다는 욕망이 모든 감정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이 남자는 혹시 집에서 남편이 몽둥이 들고 오는 거 아니냐며 웃었다. '조크'라고 생각 빵 터졌는데, 이게 실은 진심에 가까운 농담이었 보다.


사는 곳을 노출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왕복 5분 거리에 있는 길목에서 그에게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고 집에 가서 신발만 슬리퍼로 바꿔 신고 후다닥 돌아왔다. 그런데, 응? 아무도 없다. 깜짝 카메라 같은 건가?  비어있는 골목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마도 그 남자는 내가 계속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집까지 따라올까 두려워 적당한 곳에서 떼어낼 심산으로 공수표를 날리고 도망갔다고. 날밤 둘 사이에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이 한 톨도 없었는데, 며칠 이 남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정도 전화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둘  배터리가 없어서 폰이 죽어있 상태였다. 헛헛한 마음에 주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놨더니 그에게 '에비앙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다시는 못 만날 광화문의 에비앙남.


그날 밤 딸딸하게 취했는데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또 상대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까지 머릿속에 배겨있는 가 그날 결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남자는 어쩌면 나쁜 마음을 품수도 있고, 연이 닿아 만남을 시작했더라도 그 관계의 끝이 불행했을 수 있다. 물론 아무도 모른다. 좋은 사람을 알아갈 기회를 놓친 것일 수도 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이야깃거리랄까. 어쩌면 앞으로도 이날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겠지. 가지 않은 길 혹은 가지 못한  갈구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한평생 반복할 일일테다. 때로는 후회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미련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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