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요금 인상이지만, 꾸준히 생각해 왔던 일이다. 집에서, 특히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영상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습관과 작별하고 싶었는데, 관성을 이겨내는 일은 언제나처럼 쉽지 않았다. 유튜브 프리미엄이 올해 초 요금을 인상했을 때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구독 프로그램으로 갈아탔다. 가격은 9천900원이었는데, 통신사마저 가격을 올리기로 하면서 해지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던 중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이 카드의 혜택 중 하나가 유튜브 프리미엄 결제 시 20% 할인이었다. 해지하고 싶은 마음과 유지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결국 유튜브 프리미엄이 해지된 첫날 헬스장을 향하면서 다시 멤버십에 가입하려는데, 이 과정에서 자동으로 연동돼 있던 다른 결제 수단으로 돈을 내는 바람에 환불을 하게 됐다. 트레드밀에서 뛰지도 못하고 빠르게 걸으면서 고객센터와 통화를 하는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밟던 중 문득, 이 정도면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누군가 나에게 그냥 해지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닐까? 하는 망상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결제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유튜브 프리미엄이 없는 날을 맞았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처음 시작한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먹어야 하는데, 요리와는 담을 쌓아온 나로서는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요리 영상들이 구원자에 가까웠다. 사실 유튜브 프리미엄 해지를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유튜브 뮤직에 있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도 음악 없이 견딜 수 있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에어팟까지 한쪽 분실하면서 이 기회에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어보자, 결심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 들을 음악도, 볼 영상도 없어지니 외출하기 전에 책을 한 권 가방에 챙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분당에서 서울로 통학, 그리고 통근하던 시절까지 나의 곁을 지켜준 건 책이었다. 주로 대중교통에서 읽을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동네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도 나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따금씩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리곤 했지만, 예전만큼 그 빈도가 잦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증발해 버린 즐거움을 유튜브 프리미엄을 끊으면서 되찾게 된 듯하여 지속가능성은 모르겠다만, 일단은 기쁘다.
이사온 집에서 처음 만들어본 김치 볶음밥
#. 프랑스에 살 때는 우버이츠를 애용했다. 한 달에 4.99유로였나, 5.99유로 정도, 한화로 따지면 7천~8천 원 정도를 내면 무료 배달이 가능했다. 일하다가 끼니를 놓쳤을 때나 혹은 업무에 치인 날에는 꼭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던 적이 한 달에 절반은 됐기에 우버 이츠의 개인적인 효용성은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건건이 배달료를 받았고, 그 가격이 상당히 부담스러워 큰 소구가 없었다. 치킨을 시키더라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픽업을 했다. 요리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나는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것을 선호하는데, 혼자 먹어야 할 때는 주로 포장을 해간다. 허나 이사 온 집 근처에는 식당이 없다 보니 요리를 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배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입주 직후에는 먹을 거라곤 냉장고에서 정수된 물밖에 없어 쿠팡이츠를 깔았고, 마침 무료 배달이 되는 와우 멤버십 체험이 한 달 동안 가능했다. 그렇게 다시 나는 배달의 늪에 발을 들였다. 출근이 늦은 날에 배가 고프긴 한데,나가기가 귀찮아 결국 배달을 시켰다. 아니 오전 9시에 김치찜이 배달되는 줄 나는 몰랐지, 심지어 23분 만에. 그렇게 나흘간 음식을 시켜 먹었더니 차오르는 허릿살의 형태로 죄책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만 멤버십을 구독할 생각이었으나 일주일 만에 마음이 바뀌었다. 배달을 끊고 귀찮더라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흔히들 운동을 마치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까지 운동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지만, 함께 서울에 있을 때 이따금씩 나를 집에 불러 요리를 해주던 한 언니는 내가 프랑스로 나가기 전 파스타를 만들어주면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너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 파스타처럼 만들기 쉬운 음식부터 도전해 보라고 조언을 해줬다. 프랑스에 나가기 전 자취를 할 때도 요리와 담을 쌓았던 나는 파리에 가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더욱이 Picard라는 신세계를 발견하면서 레트로 식품을 잔뜩 사다가, 좁아터진 냉동고에 꾸역꾸역 보관해 배가 고플 때마다 하나씩 꺼내 먹기를 반복했다. 음식은 대부분 맛있었지만, 1인분을 끝내도 항상 허기가 진다는 느낌이 남아있었다. 주로 라자냐, 파스타와 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었더니 그 덕분에 연령에 맞지 않게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꼬달리스파에서 얼굴 관리를 받았었는데, 나를 담당했던 관리사가 나의 나이를 묻더니 그 나이에 여드름이 난다는 것은 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뜨끔했다. 그 무렵부터 어설프지만 집에서 이런저런 요리를 직접 해 먹기 시작했는데, 이제 그 습관을 서울에서도 살려봐야지.
글과는 상관없는 청량한 하늘되겠다
#. 솔직히 말하자면 유튜브 프리미엄과 쿠팡이츠에 의존해 오던 삶의 패턴을 갑자기 바꾸는 건 힘들다. 헬스장에서 40분 동안 달리기를 하는 동안 그 무엇도 내 감각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건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고 내가 먹을 한 끼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재료 준비부터 설거지를 포함한 마무리까지 그 과정이 정말 아주 번거롭다. 하지만 유튜브 프리미엄과 쿠팡이츠가 없다고 내가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또 아니다.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줄 알았던 서비스들은 오히려 나를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들 서비스가 나를 이용하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이랄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마따나 3주 정도 버티면 이 리듬에 익숙해지겠지. 물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다시 유튜브 프리미엄, 쿠팡이츠에 가입하며 작심 N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은 이렇게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종국에 나는 이 소소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