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all 7.5에도 마냥 기쁘지 못한 이유에 관하여
나에게 영어는 콤플렉스였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대학에서 전공으로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을 때도. 만 8세부터 18세까지 10년 동안 학교에서 착실한 영어 교육을 받았지만 영어를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래야 내신에서 좋은 영어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고등학교 때 처음 경험한 영어 회화 수업은 충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인가밖에 없던 수업이었고, 분반 수업으로 진행해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절반뿐이었지만 그때의 짓눌리는 공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40개가 넘는 눈알이 나를 응시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며칠간 달달 외워온 대본을 줄줄이 읊곤 했다. 그게 바로 내가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접한 첫 영어 말하기 교육이었다.
사교육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분당에서 유명한 종합학원이었다. 학원에서는 매달 시험을 봤고, 높은 점수를 받으면 반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열심히 학원을 다닌 나의 로열티에 가점을 준 것인지, 딱히 점수가 좋지도 않았는데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방학, 외고 입학을 준비하는 특별 반으로 배치됐다.
나는 그때까지 외고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다. 외고 준비반은 공부 머리는 약간 있고, 엉덩이는 무겁지만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면학 분위기였다. 여름방학에는 아침 일찍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학원 수업을 마치고 홀로 자습하다가 자정 넘어 집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외고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어에 익숙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 지문에 익숙해졌다고 해야겠지.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지하 방에서 자취까지 해가며 혹독한 수험 생활을 거치는 동안 평생 넘어서지 못할 것 같던 영어 문법의 장벽도 뛰어넘게 됐다. 그렇게 나는 영어 지문을 빠르게 이해하고 정답을 찾는 '도사'가 된 것이다.
대학교 영어 회화 수업도 고등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국에서 살다가 온 아이들이 천지삐까리여서 거 더욱 자주 꿀먹은 벙어리 신세가 됐다는 점만 빼고. 나는 학부제로 입학했기에 2학년 때 원하는 전공을 받으려면 성적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영어 회화 수업에서 A를 받을 자신이 없다보니 수업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그러는 동안 영어 말하기 실력은 위축되기 바빴지, 향상될 겨를이 없었다.
당시 문과생에게 교환학생은 필수코스처럼 여겨졌던지라 대학교 2학년 때 토플 시험을 준비했다. 여름 방학에 강남에 있는 학원에 다니며 매일 스터디를 했다. 단어 시험을 보고, 5개 이상 틀렸을 때 틀린 단어 한 개당 벌금을 걷었는데 나는 한 번도 벌금을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다. 토플 점수는 100점을 겨우 맞췄던 것 같은데, 점수를 깎인 주원인은 단연코 스피킹이었지만 총 점수가 괜찮으니 크게 개의치않았다.
직업을 갖고난 후로는 영어 보고서를 읽을 때를 제외하곤 영어와 거리를 뒀다. 외국으로 근무 신청을 하기 위해 응시한 토익 점수는 여전히 좋은 편이었다. 허나,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듣기와 읽기만 평가하는 토익 점수가 현실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테다. 그러다 얼마 전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보다 장벽이 낮은 영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일단 IELTS 점수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독학으로 준비한 IELTS의 첫 점수는 Overall 7.5였다. 높은 점수지만, 항목별로 뜯어보면 기분이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Reading 9.0, Listening 8.5, Writing 7.0까지 나쁘지 않았는데 Speaking이 무려 6.0이었다. 리딩 만점에 방방 뛰어야하는데, 현저하게 낮은 스피킹 점수는 나에게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을 앗아갔다. 이 기괴한 괴리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산물이다.
청해와 독해 일변도의 한국식 영어 교육의 치명적인 단점은 내 생각을 말이든, 글이든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살았고, 프랑스에서도 3년간 프랑스어가 안될 때마다 영어로 소통한만큼 영어가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프랑스어보다 영어 실력이 조금 나은 것이지, 결코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채점자가 눈앞에서 나의 영어를 평가한다고 생각하니,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영어 회화 수업으로 돌아가 발가벗은 채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뇌가 말랑말랑했을 때 영어는 외고 입학, 수능 고득점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과 소통하는 방법일 뿐이라는 명령어가 먼저 입력됐더라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 후회를 한들 오늘 바뀌는 것도 없다. 지금 내 뇌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이겨내려면 반복하는 수밖에 없겠지. IELTS는 두 달 안에 원하는 과목을 재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과목당 19만 원으로 결코 싸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최소 한 달은 스피킹만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리딩, 리스닝은 어려워도 최소 라이팅에는 버금가는 점수를 만들어 봐야지.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