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대신 스리랑카

by 양탕국
가지 마. 가지 말라 해라

단 한 번도 나를 붙잡은 적 없는 외할머니의 당부였다. 엄마는 할머니가 울면서 이야기했다며, 내게 이번 계획을 취소하라 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날은 2016년 7월 30일. 프랑스 남부 휴양지 니스에서 트럭 돌진 테러가 난 지 16일 후, 프랑스 북부 소도시 생태티엔의 성당에서 IS테러범에게 한 신부님이 피살당한 지 4일 후였다. 그리고, 내가 프랑스 리옹으로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나는 리옹에 잠시 살고 싶었다. 그 계획을 위해 든 적금의 이름이 무려 ‘진짜리옹이’였다. (K은행의 스마트폰 적금은 예금 이름을 본인이 설정할 수 있다) 이미 2015년에 ‘리옹이’ 라는 이름의 6개월 짜리 적금을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일 때문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2016년에는 꼭 가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2016년 7월 30일. 나는 이미 한 달 치 숙소와 어학원 비용을 지불했고, 유럽 여행을 위한 비행기표와 유레일 패스, 8월 초 있을 프랑스 남부 안시 불꽃축제의 티켓도 구매한 상황이었다. 물론 24인치 캐리어도 꽉꽉 채워둔, 그야말로 당장 떠나도 될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어딘지도 잘 모르는 할머니가 손녀가 간다는 곳이 자꾸 뉴스에 위험하다고 나오자 혼비백산하셨다고 하니, 그 걱정을 다 지고 갈 만한 곳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리옹행을 포기했다.


*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나는 리옹에 가기 위해 이미 일을 그만둔 상태. 미식의 도시에서 매일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길 줄 알았건만, 현실은 다녀오지도 않은 여행 짐을 푸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 손엔 만기된 적금이 있었고, 속속 환불되는 금액들이 차곡차곡 통장에 쌓여갔다.

뭐라도 살까? 호캉스라도 할까?

하지만 리옹살이를 위해 쓰려고 모은 돈인데, 그렇게 계획에 없던 일에 허투루 쓰기에는 아까웠다.


방송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종종 백수 상태를 맞닥뜨리게 되지만, 이렇게 호기로이 백수 선언을 했다가 모든 게 물거품 된 적은 없었다.

한껏 시무룩해진 나는 일단 그간 못 본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대리만족을 위해 EBS 세계테마기행을 닥치는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스리랑카를 만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