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리랑카에 가고 싶었던 이유
남부 아시아에 자리한 스리랑카. 배낭여행자들의 대륙이라는 인도, 그리고 신혼여행자들의 섬이라는 몰디브와 가까운 곳에 있는 나라. 그 정도의 정보가 스리랑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정보가 전무한 상태의 나라에 가고 싶었던 건 앞서 말했던대로 EBS 세계테마기행을 시청한 후였다.
스리랑카의 캔디Kandy라는 도시에서 하푸탈레Haputale까지 가려면 6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달려야 한다. 아주 느리고 낡은 기차는 곡선으로 휘어진 기찻길을 달리며 놀라운 전경을 선사한다.
나는 이 풍경이 보고 싶었다.
스리랑카만 여행하기엔 나의 백수 기간이 아까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리랑카 여행을 위한 한국어 가이드북은 없었다. 일단 론리플래닛 스리랑카 편의 영문버전부터 구입했다. 그 책을 보며 가고 싶은 도시를 추리고, 각 도시에 2~3일 정도 머물 예정으로 계획을 세우니 2주의 시간이 금세 채워졌다.
노동자에게 주어진 2주의 휴가와 백수가 체감하는 2주의 휴가는 확실히 다르다. 지금 나는 5~6주에 한 편씩 방송을 만들고 있는데, 보통 촬영 기간 일주일 동안 작가는 여유로워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간 못했던 것들을 하루하루 퀘스트 완료하듯 해 나간다. 하지만 백수에게 2주는 지나간 어제나, 현재 숨쉬는 오늘이나, 다가올 내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굳이 퀘스트 완료하듯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대학 때부터 혼자 여행을 해온 지 어언 10년. 늘어나는 건 여행 짐 간소하게 싸기나 여행 저렴하게 하기 같은 꿀팁보다 한없는 게으름과 무계획이 주는 여유로움이다.
일단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 2주 후 몰디브에 가는 티켓도 샀다. 그 다음 여정은 말레이시아. 그 다음 여정은? 타이항공을 이용하게 됐으니 방콕 스탑오버를 놓칠 수 없지. 마지막 도시는 태국 방콕이다. 돌아오는 날은 출발일로부터 45일 후였다.
몰디브 이후 다른 나라에 머무는 날들은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 다니다 보면 더 정이 드는 곳이 생길 거고, 어느 땐 예정보다 더 빨리 뜨고 싶은 곳도 있을 것이다.
진짜 배낭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전에도 나는 홀로 동남아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보통 2주에서 한 달 사이의 여행을 마치고 오면 친구들은 “넌 배낭여행을 잘 갔다오는구나. 진짜 용김하다” 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 난 진짜 배낭여행을 가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대부분의 여행사에서 나누는 분류에 의하면 그동안의 내 여행은 배낭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이었다. 대학 때 세일가에 득템한 10살 남짓된 샘소나이트 캐리어를 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누비는.
특별히 그 여행이 고생스럽거나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친구들이 내 여행에 대해 배낭여행 운운할 땐 가끔 궁금증이 일었다. 내 나이라면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게 더 한껏 영근 청춘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들뜬 로망도 있었다. 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진 못했는데, 그게 뭐라고 이토록 망설인단 말인가.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가 직접 지고 다니는 여행은 기존의 여행과는 분명 다를 터였다.
고생과 행복과 아쉬움과 뿌듯함 등 로망과 현실을 저울질했던 날들. 이 며칠의 고민을 잠식시키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배낭을 사버리는 것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무게, 10kg
장담컨대, 여행 경험과 짐 싸기의 효용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건 나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배낭에 짐 싸기는 2주 이상의 ‘비교적 장기여행’ 10년차인 내게도 벅찬 일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쓰잘 데 없는 것들을 욕심부리며 챙겼는지 깨닫게 됐다. 한 달 넘게 배낭여행을 하며 몸으로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니 짐싸기의 과정부터가 ‘비우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프로 배낭여행러들이 제안하는 평균적 배낭 무게는 8kg. 주로 24인치 캐리어를 들고 여행을 다닐 때 내 짐의 무게는 16kg.
며칠 간 빼고 넣고를 반복한 후 여미게 된 배낭의 무게는 10.3kg. 그래도 이때껏 가장 긴 여행을 가면서 가장 가벼운 짐을 쌌으니 이 정도면 선방 아닌가. 앞으로 한 달 반, 나는 이 무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떠났다
떠나는 날 - 스리랑카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록은 영상으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