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다 밤에 도착했는데 친절하게 맞아주며 아침은 언제 먹을 건지 물어본다. 계획이 없는데 게으르기까지 한 나는 조식 시간을 가장 끝 타임으로 예약했다.
아침은 9시 반까지라길래 그때로 이야기하고, 그날 밤은 와이파이를 찾아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9시 10분에 전화가 온다.
30분까지 가기로 하고 27분에 나가보니 이미 조식 먹는 곳은 다 정리된 느낌이길래 '아침은 포기해야하나보다' 하며 방으로 돌아와 갑자기 전에 없던 배고픔을 느끼는 찰나, 다시 전화가 온다.
“밥 먹는 거 잊은 거 아니지?”
“식당 이미 닫은 거 아냐? 아무도 없던데..”
“아직 네가 아침을 안 먹었는데 그럴 리가! 내가 잠깐 복도에 일 보러 갔을 때 왔다 갔구나. 얼른 다시 와!”
아이, 정말이지 친절한 사람들.
(사진엔 안나왔지만 이 호텔 테라스에서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한강 정도 되는 골 페이스 그린Galle face green이라는 곳이 보인다.)
첫 날 일정. 콜롬보 시내를 걸어보기로 한다.
자정 넘어 와서 바로 택시를 타고 이동한지라 날씨 가늠이 안된다. 일단 덥다는 말을 들었으니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선크림을 바르고, 부채도 선글라스도 챙긴다. 그런데 웬걸, 하루종일 선글라스는 커녕 덥지도 않았다. 습하지만 끈적이진 않는다.
당시 우리나라의 살인적인 더위를 생각하면 이건 거의 축복 수준.
(길 가다 본 정갈한 붉은 건물 / 옛 네덜란드병원Old dutch hospital 구역)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 편에 나온 콜롬보 시내에서 기억나는 거라곤 옛 네덜란드 병원 뿐. 과거에 병원이었던 곳이 지금은 쇼핑구역이자 사람들의 쉼터가 됐다....는데 잘 모르겠어서 두리번거리니 스리랑카 아저씨가 말을 건다.
“네덜란드 병원하고 박물관 가려고? 오늘 거긴 닫는 날이야. Anyway my name is Jeff. I am chef”
이름과 라임 쩌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 말에 황급히 가이드북을 보니 박물관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라고 적혀있다.
(서류 아닌 리얼 가이드북. 당시엔 한국어 버전 스리랑카 가이드북이 없었다. 론리플래닛 영문 버전인데 사진이라곤 맨 앞에 ‘스리랑카의 매력 top 20’ 챕터에만 있다)
휴관일이 아닌 곳들 중 가고 싶은 곳들을 추려보았다. 첫번째 방문 장소는 강가라마야 사원 Gagaramaya temple이다. 툭툭 기사들은 '강가'라고 한다.
불교 유적이 남겨진 아시아 국가를 적지않게 여행했지만 '사원이 다 비슷하지'라는 생각은 늘 그 무수한 사원들에 다다르면 무너진다.
종교적 건물은 그곳을 만든 옛 사람들의 마음과 그곳을 방문한 현재의 사람들의 마음이 더해져서인지 더없이 경건하다.
스리랑카의 사원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데, 그래서인지 참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는 시마 말라카 사원 Seema malaka. 스리랑카가 낳은 세계적 건축가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가 설계하고 건축한 사원으로, 물 위의 사원이다.
제프리 바와는 일명 '오지 건축가'로 불리는데,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인 듯하다.
그가 지은 칸달라마 호텔의 로비는 커다란 바위 사이를 지나오는 바람 덕분에 에어컨 없이도 에어컨을 능가할 만큼 시원하다고 한다.
입구에 거대한 불상이 있는 비하라마하데비 공원viharamahadevi park. (현지에선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넓기도 정말 넓다. 슬슬 걸으며 구경하는데 이곳 정원사 아저씨가 본인의 정원사 자격증을 들이밀며 공원 구경을 시켜준다고 한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모른 척 따라나선다. 얼마나 주면 될까 생각하며 10여분 투어를 하고나니 "초록색 그랜드 지폐"를 달라며 1000루피 씩이나 요구하는 아저씨.
하도 으슥한 곳에서 얘기하길래 관리자인지 군인인지 유니폼 입은 아저씨가 있는 데까지 걸어나와 그 옆에서 내 기준 마지노선인 300루피를 주자 재빨리 집어넣는다. 물론 뒤에 따라오면서 "스리랑카는 물가가 낮으니까 더 줘"라고 엄청 속삭인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귀여운 오지라퍼지만, 과한 친절은 항상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휴식이 있는 공간. 평일이지만 쉬는 날이었던 걸까, 한낮부터 가족들이 참 많았다)
아이폰이 알려주는 콜롬보 일몰 시간은 오후 6시 22분. 일몰 감상 포인트라는 골 페이스 그린Galle face green으로 간다.
근처에 있는 라마다 호텔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다리다가, 5시 50분쯤 슬슬 몸을 일으킨다.
오후 2시부터 밤까지 비 올 확률 90%라던 날씨는 막상 몇 방울 떨어지는 것이 전부다. 구름이 짙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 덕분에 하루 종일 덥지는 않았다. 300루피의 정원사 아저씨 왈, 나의 다음 여정지인 하푸탈레나 누와라엘리야로 가면 추워질거라고 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여기에도 옷은 있고 사 입으면 되는 일이지.
이곳은 짐작컨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서울의 한강 같은 곳이다. 가족과 연인, 친구, 여행객들까지 한데 모여 있다.
가장 핫한 오락거리는 연 날리기인 듯. 간이 상점들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더욱 분주해진다.
이곳에 오면 스리랑카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7시가 다 되어서야 노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구름에 가려져서 ‘참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앞으로 만날 아름다운 노을이 더 많겠지 생각하면 그다지 아쉬울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