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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탕국 Aug 30. 2023

캄캄한 어둠 속 희망을 바라는 간절함

<인 허 핸즈>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감격스러운 날로 이 날을 기념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있어 8월 15일은 탈레반에게 나라를 빼앗긴 날로 기억된다. 2021년 8월 15일, 미국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며(아프가니스탄 정부와의 협정이 아니었다) 20년 간 아프간에 주둔했던 미군은 철수했고, 탈레반은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까지 점령하며 집권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에 모여든 사람들, 비행기 바깥에 매달려 탈출을 시도하다 추락하는 사람들, 아이라도 살려보기 위해 미군 측에 아이를 넘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연일 뉴스에 보도되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인 허 핸즈>는 탈레반 집권 아래 엉망이 되어 가는 조국과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여성을 위해 노력하는 한 여성, 아프가니스탄의 최연소 시장이었던 자리파 가파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 허 핸즈. In her hands. 2022]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최연소 시장을 지낸 여성 자리파 가파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말이다. 탈레반의 집권이 목도한 순간, 그들의 암살 리스트에는 자리파가 올라 있을 터. 그도 그럴 것이 자리파는 탈레반의 이슬람 극단주의 이념에 반대하며 아프간 여성의 인권 신장을 외친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만 24세 나이로 아프가니스탄 마이단하르의 시장에 임명된 자리파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여성의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의 테러를 뿌리 뽑겠다는 목적으로 2001년부터 20년간 전쟁을 수행해 왔다. 더불어 아프간 국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지원도 계속해왔는데, 이는 여성의 교육과 직업활동 등을 가능하게 했다. 탈레반 정권 하에 몰래 학교에 다녀야 했던 자리파는 무사히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유학길에 올라 인도의 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귀국한다. 이후 아프간 마이단하르의 시장으로 취임한 그는 여성 인권을 무시하는 아프간 문화에 전면 반기를 들며 여성의 교육을 강조하는 인권 운동을 펼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여성의 단독 행동, 심지어 집밖으로 나서는 간단한 외출조차 금지하는 탈레반 세력에겐 눈엣가시이자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의 주장에 아프간 국민들의 마음이 동하면 안 되기 때문.

사실 그동안 자리파가 행한 인권 운동은 모두 목숨을 내놓고 한 일이기도 하다. 취임 첫날부터 어린 여성이 시장직에 오르는 것이 불만인 남성들의 공격을 받았고(실제로 사무실에 들이닥쳤다고 한다), 시장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탈레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을 받았다. 심지어 아프간 정부의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집 앞에서 탈레반에게 암살당했다. 그랬기에 탈레반이 수도를 점령한 그때, 자리파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마이단하르의 시장을 지낸 자리파 가파리 / 이미지 출처: imdb


아버지의 고정관념과도 싸워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다큐멘터리의 중반부에는 자리파가 아버지와 통화하며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자리파가 결혼하지 않으면 집에 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그냥 하라면 하는 것이라고 화만 낼뿐이다. 통화 직후 자리파는 울컥하며 아버지의 고정관념과도 싸워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사실 자리파의 아버지는 친미 성향인 아프간 정부 인물이었고, 자리파가 대학 교육까지 마칠 수 있었던 걸 보면 아프간 사회에서는 꽤 진보적인 축에 속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그 진보란 것이 아프간 밖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다.

자리파의 아버지가 이러할진대 탈레반은 어떻겠나. 그들이 내세운(해석한) 율법에 따라 여성은 단독으로 외출할 수 없으며 외출 시에는 전신을 덮은 부르카를 착용해야 하고 남자 보호자와 동행해야 한다. 탈레반은 2년 전 권력을 취하며 친 여성적인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했지만, 집권 2년째에 접어든 현재 여성 인권은 끝 모를 바닥으로 날이 갈수록 추락만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탈 아프간’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해외 장학생으로 선발된 여성들의 출국길을 탈레반이 막았다고 한다. 남성 보호자와 함께 출국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여성들의 대표적인 직업 활동이었던 미용실은 강제 폐쇄당했다. 여성의 교육과 외부활동을 원천 차단하다 보니 여성 의료인을 찾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여성은 여성 의료인에게만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프간 여성은 병원도 가기 힘들다(어차피 그마저도 친족 관계인 남성 보호자가 있어야 가능할 테지만 말이다).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가상현실처럼 여겨질 법한 이 이야기는 2023년 아프가니스탄의 현재다.

전신을 가린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의 여성들 / 이미지 출처: imdb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한 번은 돌아가야 해

자리파는 가족들과 탈출에 성공해 독일에 당도한다. 당시 언론은 자리파가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인터뷰한 이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그가 사망한 것이 아닐까 우려하였지만, 자리파는 터키 대사관의 도움으로 이스탄불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독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탈레반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동 시에 들키지 않으려고 자동차 뒷좌석 바닥에 몸을 납작하게 눕히고 가방으로 몸을 감추었단다.

그러나 자리파는 갈수록 처참해지는 고국의 상황, 그럼에도 목숨을 내걸고 시위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약혼자가 걱정에 가득 찬 얼굴로 그러다 죽으면 어떡하느냐고 묻자 자리파는 덤덤히 답한다. 그렇게 죽는다면 헛된 죽음은 아니겠지.

다큐멘터리의 후반부는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열어 지식을 전파하고 식료품을 배부하는 등 활동가로 살아가는 자리파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자리파는 독일로 망명하여 아프간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제 저한테 총구를 겨눴던 사람들과
같이 있어요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명백히 자리파 가파리다. 그러나 사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여전히 아프간에 살아야 하는, 아니 살아남아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일례로 자리파가 마이단하르의 시장이던 시절, 그의 운전기사 및 경호원으로 일했던 마숨이라는 남성은 자리파의 목숨을 노리는 탈레반에 의해 자신 또한 위험에 처했던 적이 여러 번이지만, 자리파가 국방부 인사로 임명되며 군인만을 운전사로 기용할 수 있다는 규칙에 따라 직장을 잃고, 이후 탈레반이 정권을 잡자 살기 위해 탈레반과 어울린다. 자리파를 너무나도 존경한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그는 탈레반이 자리파를 암살하려 했던 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과 함께 웃는다.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 그곳 사람들의 삶은 너무도 처참하다. 빈곤과 기아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아동을 노동 현장에 내모는 일도 그 비율이 40%에 달한다. 특히 여성의 삶은 그것이 삶인가, 단지 죽지 못해 호흡하는 것인가 의아할 정도다. 탈레반은 여성의 중등 교육과 직업 활동을 금지하고 스포츠와 같은 여가 생활도 금지했다. 자유로운 이동은 당연히 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 남성 보호자와 동행해도 이동이 불가하다. 최근에는 아프간 내 국립공원에 여성이 출입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여자가 무슨 관광을 하느냐는 이유에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축구 선수들 / 이미지 출처: AP
시위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 이미지 출처: AFP


국제 사회는 탈레반을 정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이들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전 정부조차도 국제 구호기금으로 나라를 꾸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제는 탈레반에 대한 반감으로 그 지원마저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BBC 보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곳곳엔 여전히 여성의 교육을 위한 비밀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외교관, 엔지니어, 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해당 보도는 한 여학생의 결의에 찬 한 마디로 마무리된다. 계속 저항할 것이다, 언젠가는 터널 끝에 빛이 보일 테니까. 이것을 보자 활동가이자 작가인 리베카 솔닛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 떠올라 옮겨본다.


희망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제, 불확실성의 광막함 속에 행동할 공간이 펼쳐진다는 전제 위에 자리 잡는다.

- 리베카 솔닛, <어둠 속의 희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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