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LG의 방식으로
스티브 잡스는 노트북에서 키보드 터치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애플의 노트북을 사용해보면 키보드의 터치감이 매우 좋다. 잡스는 수많은 시도 끝에 최고의 터치감을 주는 디자인을 찾아내고는 그대로 맥북을 생산하려 했다. 하지만 담당자 모두가 난색을 표했다. 이 시제품은 알루미늄을 공작기계로 깎아서 디자인대로 구현한 것일 뿐 생산용이 아니었다. 생산을 위해서는 공장에 이런 공작기계를 수천 대 설치해야 하는데 당시로는 불가능한 일었다. 그때까지는 플라스틱 사출로 제품을 생산해왔지 공작기계로 생산한 경우는 없었다. 잡스는 이런 얘기를 실무자들에게 듣고도 그 기계로 생산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중국의 팍스콘에 요청해서 수천 대 투자를 요청했다. 잡스의 요청을 받아들인 사람이 팍스콘의 테리 고 회장이다. 비범했던 테리 고 회장은 수천억 원을 대출받아서 기계들을 설치하고 맥북을 생산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애플의 맥북이 탄생했고, 알루미늄 가공기술은 아이폰에도 적용되었다. 이제는 애플의 스마트폰, 맥북, 아이패드 등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이 방식으로 생산된다.
그런데 알루미늄 가공으로 노트북을 만들면 키보드 터치감은 좋아지지만 알루미늄을 통 가공하기 때문에 제품이 무거워진다. 나는 그램을 개발하면서 이 부분을 고민했다. 우리가 애플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은 바로 가벼움이었다. 맥북이 다 좋지만 무겁다는 약점이 있었다. 우리는 가벼움을 포기할 수 없었고, 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가벼운 마그네슘 합금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사출도 할 수 있어서 우리 수준에 맞는 방법이고 큰 투자 없이 가능한 생산 방식이었다. 우리는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선택했다.
우리가 알루미늄 가공법을 따라갔다면 생산까지 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투자비가 최소 수백억 원은 들어갈 텐데 우리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그 기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생산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마그네슘을 사용하다 보니 아무래도 키보드의 터치감이 떨어지고 입력할 때 오타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생산기술원의 도움도 받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무게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이 부분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