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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Nov 11. 2018

조지 오웰은 언제 조지 오웰이 됐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작가로서 존엄하게 버티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으로 퉁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책은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에서 29편을 엄선해서 묶은 책이다. 혹자들은 <나는 왜 쓰는가>를 글쓰기에 대한 지침을 주는 문예서 정도로 알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왜 쓰는가>는 문예서도 아니고 이론서는 더더욱 아니며, 순전한 에세이다. 타인에게서 글쓰기에 대한 도움을 얻는다는 것도 넌센스지만(글쓰기는 결국 스스로 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이 글에 접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저지르는 행위다. 에세이는 속물적인 목적과는 맞지 않는 장르다.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가이드북을 살펴보라. 요리를 잘하고 싶으면 음식에 대한 에세이가 아니라 요리책을 찾아보라. 에세이는 책을 읽는 당신을 모시는 장르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vip 대우를 받고 싶으면 당장 이 책을 덮었으면 좋겠다. 이 책뿐 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에세이를 다 덮었으면 한다. 그런 에세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를 vip 대우하는 책, 특히 그런 에세이가 좋은 글일리는 만무하다. 


독서행위라는 것은 결국 독자와 작가의 권력다툼이다. 독자는 작가가 조금이라도 권위주의적인 것 같으면 책을 덮는다. 그러나 작가는 태생부터 자기 원고의 주인이여야 하므로 권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대체 독자는 어떤 책을 읽는가. 작가는 어떤 책을 써야하는가. 독자가 읽는 종류의 글은 2가지다. 첫째, 작가가 납작 엎드려서 당신만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겠다고 하는 그런 종류의 책. 듣기 좋은 말, 쉽게 읽히는 글로 전 지면을 채우는 그런 책 말이다. 둘째, 당신이 조금 기분 나빠도 그걸 감수하고서 읽는 책이다. 이 두 번째 종류의 책이 보통 오랜 세월이 지나도 ‘좋은 책’으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당신은 쉽게 익명의 작자에게 머리를 굽히고 싶지 않으니 대개 당신이 고르는 책은 유명하고 잘 알려지고 대단하더라 하는 식의 작가의 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제목은 정확히 다음과 같다. <조지 오웰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만약 이 책의 제목에서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을 없앤다면? 아니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름이 박혀서 다음과 같다면? <푸알의 에세이 : 나는 왜 쓰는가>. 극단적인 경우 염병한다는 소리를 하면서 책을 침을 뱉을지도 모르겠다. 조지 오웰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지 오웰처럼 널리 읽히고 싶다면, 조지 오웰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거의 읽히지 않았지만 <동물농장>은 여전히 회자된다.


내가 조지 오웰(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들은 모두 밑바닥 시절을 겪었다. 오웰은 태어나면서부터 오웰이 아니었다. 1933년 그가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쓴 순간에도 그는 오웰이 아니었다. 그는 <동물농장>의 압도적 성공을 등에 업고서야 비로소 ‘조지 오웰’이 될 수 있었다. 독자들이 살짝의 지루함과 작가의 권위를 다 참고 넘기면서 읽으려 하는 그런 작가 말이다.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는 47년의 짧은 세월로 인생을 마쳤다. 출세작 <동물농장>이 출간된 것은 1946년으로 그가 43이 되던 해였다.<1984>가 출간된 것은 1949년이니, 작가로서 권위를 허락받은 해는 사실상 47년 인생 중에 4년뿐이었던 셈이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때를 첫 문학 에세이 <스파이크>가 나온 1931년으로 보앗을 때, 작가 인생 20년 중에서 4년을 제외한 나머지 16년은 그에게 어떤 세월이었을까. <동물농장>이 나온 1946년을 기준으로 그의 글솜씨는 그 전이나 그 이후나 똑같이 날카로우면서 불친절하다. 거듭 말하지만 독자들은 불친절한 작가의 책을 쉽사리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계속 불친절한 글을 써왔다는 것, 그가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 나는 그 사실을 이 책에서 알 수 있었다. 


에세이라는 것은 작가가 가장 잘 드러나는 글이다. 에세이스트는 소설 속 허구나 환상, 인물들 사이의 갈등 뒤로 숨을 수가 없다. 에세이가 진정으로 힘을 가지려면 작가의 경험과 통찰이 필수적이다. 그 말은 곧 좋은 에세이가 나오려면 작가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사람’은 너무 추상적이라서 내 표현으로 고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서 심도 있는 고민을 해본 사람,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렸고 그에 대한 탄탄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모르는 세상의 다른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갈 만큼 재미있는 사람. 즉 감성적인 매력과 인격적인 판단과 논리적인 전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에세이는 또한 순간순간의 발현이므로, 각 시기별 오웰의 에세이를 모아 놓은 이런 책이야말로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스페인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 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그는 1936년부터 쓴 작품들에 대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에 쓴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첫 에세이인 <스파이크>는 가난한 부랑자들에 대한 글이다. <코끼리를 쏘다> 역시 제국주의의 일원인 식민지 경찰로서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다. 심지어 어린 학창시절을 회고한 <정말, 정말 좋았지>조차도 그가 왜 전체주의적인 권위를 혐오하게 되었는지 암시하는 글이다. 그는 자유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방종을 경계했다. 그는 스페인내전에서 힘이 없는 이상주의자들이 무너지는 장소에 같이 있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시니컬하고 다소 회의적인 어감이 흐른다. 이는 두 번의 전쟁을 겪고, 이상이 실현되자마자(스페인내전, 러시아 공산주의의 실태)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구제할 길 없는 현실주의(라고 쓰고 안일주의, 외면주의라고 읽는다)에 빠지는 데 반해, 오웰의 시선은 항상 자유라는 이상을 향해 있었다. 여기에 실린 많은 글들이 자유를 다루기 위해서 작가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오웰의 대표작은 <동물농장>과 <1984>지만 나는 언제나 그의 대표작을 <카탈로니아 찬가>라고 생각한다. 출세작들보다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더 끓어넘치는 조지 오웰,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그 말을 잘근잘근 삼키면서 하나씩 뱉어내는 작가의 울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울분이야말로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정치적 이유’며, 그의 글에 깔린 회의적인 어감의 근원이다. 정의와 이상이 현실의 세력 관계로 무너지는 스페인내전은 곧 <동물농장>과 <1984>의 뿌리며, 이는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보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와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모두 본 책에 실려있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 안타까운 관계에 대한 통찰, 전체주의와 억압에 대한 혐오(<정말, 정말 좋았지>, <코끼리를 쏘다>)와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마라케시>, <스파이크>, <교수형>, <가난한 자는 어떻게 죽는가>)는 각각의꼭지점이다. 그는 그것들이 이루는 삼각형 어딘가에 서있다. 그의 말대로 정치적, 그리고 작가적  '울분'을 품고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에세이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마라케시

좌든 우든 나의 조국

물속의 달 

정치와 영어

두꺼비 단상 

나는 왜 쓰는가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정말 정말 좋았지 

작가와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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