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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알 May 18. 2016

남자와 비겁의 끝없는 밑바닥에서

강남역 묻지마 살인에 대해서 

강남역에서 사람이 살해당했다. 이슈의 무게만큼이나 담론도 무겁다. 젠더 문제, 페미니즘, 난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한다. 그것들이 사건의 본질을 꿰고 있는가. 아니 이 사건에 본질이라는 것이 있는가. 여자라서 살려달라, 너는 살아남았다는 말은 일견 날카롭다. 언제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왠지 모를 원망이 느껴지는 말이다. 담론은 그 감정만큼이나 날서있지만 방향이 없다. 반대로 남성들을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은 일견 우둔하다. 그들이 말하는 억울함만큼이나 무디다. 그 우둔함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미친 놈의 살인극이 아니다. 


그냥 미친 놈이 아니다. 이 살인자의 동기는 간단하다.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 생략된 말을 살려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자격이 없는’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 그 남자의 세계에서는 여자는 온전히 약자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가 아니라 ‘약해야만 하는 자’ 약자다. 약해서 언제나 자신의 밑에 있어야 하고 그 위치에 맡는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여자다. 단순한 편집증이라기에는 이 관념이 너무 퍼져있고 너무 위험하다. 끊임없이 본인들보다 약자를 만들고 싶은 못되고 못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우월함을 느끼고 싶지만, 현실은 본인들이 제일 밑바닥이다. 


사람은 그만큼 못된 존재다. 이 시대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남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위를 쳐다보는 기개나 용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내놓으라는 것은 위안이 되는 가상적 약자의 존재였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여성, 노인, 소수자들이었으리라. 그들은 자신들의 가상세계에서 차별과 혐오를 연습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성을 떠나서, 소수 다수를 떠나서, 사람은 가진 바 매력과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현실과 상상의 불일치는 항상 좌절과 파국을 가져다준다. 그것들을 이겨내지 못하면 자존심과 열등감이 찾아온다. 그 속에서 그 남자가 선택한 것은 묻지마 살인이었다. 1시간 동안이나 숨죽이며 기다린 칼부림이었다. 


이건 순전 비겁의 문제다. 남자, 여자를 떠나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약한 자들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이것은 공존의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아마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뻔뻔하고 몰염치한 것이 사회에 퍼져있는 것 같다. 강자나 약자나 모두 같은 존재고 똑같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생각해보면 교육기관에서는 그 반대의 것을 학습하는 것 같다) 여기 만연한 무기력과 꿈꿀 수 없는 좌절감이 비겁함으로 터져나온다. 특정 의사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류로 수많은 비난과 조롱을 맞는 연예인들을 생각해본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은 또 다른 약자다. 끊임없이 비난거리를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약자를 찾아 움직이는 못된 남자들이나 다를 바 없다. 


난 점점 걱정스럽다. 인간관계와 생존 경쟁의 팍팍함 속에서 따듯함과 인정을 찾아 움직여도 모자랄 판이다. 그 삶의 안쓰러움 속에서 사람들은 혐오와 비겁에 점차 중독되는 것처럼 보인다.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그것들을 부채질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집단이 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지 좀 돌아봤으면 좋겠다. 비웃음과 멸시가 가득찬 곳에서는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다. 끝없이 약자를 만들어내고 공격하지 못해 안달인 곳에서는 우리들끼리의 신뢰 따위 없다. 다 갈가리 찣겨버린다. 


어찌되었건 남녀관계를 권력구조로, 그것도 500년 전 전근대적 방식으로 정당화하려는 관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이 사건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불안은 온당하다. 그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것이니깐. 죽음 앞에서 우리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비난은 부당하다. 그런 식의 비난은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할 테니깐. 두 가지를 잡아야 한다. 우선 저런 성-인식이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지 철저하게 파헤쳐야한다. 잘게 쪼개고 도려내서 주범을 잡자. 그리고 비겁해지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비겁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성찰할 것. 아직 우리는 차별과 비겁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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