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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선열 Oct 14. 2024

배롱나무 꽃이 피고지듯이

나이듦에 대하여 


 마른천둥이 요란하다. 덜컹대는 빈 수레 같다. 굵은 빗줄기라도 한소끔 쏟아져 내리면 마음이 좀 후련해질 듯하건만 여름내 인색하던 비는 생색내듯 소리만 먼저 요란하다. 배롱나무꽃에 비가 떨어지면 또 한 번 꽃 이파리들이 무너져 내리겠지, 마음이 스산해진다. 유난히 가물던 여름 햇볕에 타버린 채 시들던 꽃잎이 애처로웠는데 막상 비가 내리면 비를 이기지 못한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이다.

불볕더위에도 한결같이 유지된 진홍빛 꽃 무리는 송이송이 피고 지며 자리를 메꾸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비에도 무수히 꽃잎을 떨구고 준비된 다른 꽃을 피워 올리겠지. 살아남은 꽃잎들은 이 비에 생기를 더해 배롱나무꽃, 진한 핑크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으리라. 피고 지며 살아남기, 배롱나무꽃이 세 번 피고 지며 한여름이 간다.     

사람의 일생도 같지 않을까?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수없이 피고 지며 삶을 이어가야 한다. 한 번에 피었다 지는 벚꽃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고 백일홍처럼 한번 개화로 백일을 버텨내는 삶도 있지만, 배롱나무꽃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살아내는 게 평범한 사람의 일생이 아닌가 한다.      

젊은 시절, 한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짧고 굵게 살고 싶었다. 불꽃 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한 줌 재로 승화할 수 있는 삶에 가치를 두었다. 

세월이 가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을 알게 되었고 한 송이 꽃처럼 피었다 지는 인생이려니 생각했다. 다시 새로운 꽃이 피고 지는 힘든 과정을 겪어 내고 싶지는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 사회가 변하고 사람도 적응한다.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를 맞으며 한 번의 꽃 피우기로 삶을 마감할 수 없는 시절이 되어 버렸다. 미처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삶을 정리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들이 들리지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도 해야 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길어진 것이 분명한 세월을 아무것도 안 하고 정리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리는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정리하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이 계속되는 한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뜻하지 않게 펼쳐진 100세 시대의 노후, 한여름 세 번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처럼 세 번째 삶을 살아내야 한다, 자식으로 부모의 양육을 받던 한 시절,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던 두 번째 시절, 이제 남겨진 세 번째 세월, 전처럼 자식들의 돌봄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 스스로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     

준비 없이 시작되고 뜻하는 대로 살게 되지도 않는 인생에서 앞뒤 돌아볼 시간 없이 숨 가쁘게 의무와 책임으로 살아야 했던 젊은 날, 그 시절의 열정과 치기가 순간순간 부럽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발목을 붙드는 의무와 책임을 벗어나기 힘들었음도 인정해야 한다. 살기 위해 앞뒤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야 했다.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난 지금이 오히려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내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 볼 일이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시작해 보자. 젊은 날처럼 헛된 치기나 욕심이 없으니 부담 없이 시작할 수도 있다. 잘하려 욕심부리지 말고 소일 삼아 시작하면 뜻밖에 일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삶이 계속되는 한 성취의 즐거움을 배제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자식에게서 벗어날 수만은 없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아들의 뒷모습에 마음이 짠해진다. 아쉬움과 회한이 남는다.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탓해 본다.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지켜보는 마음에 안쓰러움이 가시지는 않는다

사회적 관습이나 통념에서 벗어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이 들어 욕심은 노추라느니’, ‘뒷방 늙은이’ 라느니. 젊은 층에서 기대하는 노년의 모습도 간과할 수는 없다. 편히 쉬라는 말에 안주하고 싶기도 하다.     

이제 종심의 나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으니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도 될 때이다.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실감하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염려가 따르기도 하지만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의학의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9988234라는 말이 현실이다. 아직은 발목을 붙드는 자식이나 세속의 말들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다. 남은 내 생애도 자식을 위해 보내고 싶다거나 정리하고 편히 쉬고 싶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 내 앞에 놓인 백세시대의 삶을 감당해 볼 일이다. 배롱나무꽃처럼 세 번째 힘겨운 꽃 피우기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나이 70에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이제 와서 이제부터로 바꾸어 보아야겠다. 내 앞에 새로이 놓인 백세시대를 감당해 볼 일이다.

시간은 그냥 흐른 것만은 아니다. 열정과 패기는 사라졌지만, 경험과 지혜가 남았다. 나 자신을 위한 세 번째 삶을 살아 볼 일이다. 마른천둥처럼 소리만 요란할 수도 있다. 비가 오고 그치는 것이야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다시 피려는 노력은 나만의 것이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배롱나무가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세 번 피고 지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보살핌을 받았고 치열한 젊은 날을 보냈으니 이젠 나도 세 번째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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