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생각
감자 -장만영-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 이 많은 감자를 /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는구나/ 올 같은 가뭄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까?/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머리털이 허이연 / 우리 할머니 / 할머니가 보내주신 감자는 / 구어도 먹고 쪄도 먹고/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이 뜻은 감자가 반가운 게 아니라 할머니가 반가운 겁니다. 할머니가 감자를 많이 보내셨다가 아니라 할머니가 보내셨기에 감자가 많아 보이는 거지요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이것도 역시 할머니가 보내주셨기에 더 커 보이는 겁니다. 감자가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이 시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유난히 정이 많으신 작은 할머니 생각이 났었기 때문이다. 작은할머니는 얼굴도 쪼글쪼글, 손도 쪼글쪼글 웃으면 하회탈처럼 주름에 눈이 묻혀 보이지 않으셨다. 쪼글쪼글 손에서 만들어지던 마술 같은 먹거리들도 떠 올랐다
할아버님 형제분이 네 분이시니 네 분 할머님이 계시지만 특별히 정이 많으신 분은 둘째 작은 할머님이셨다. 서울 마님답게 기품이 있으신 우리 할머니는 내심 자랑스러웠지만 어려웠던 반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우리를 반겨 주시던 작은 할머님은 마냥 친구 같았다. 갓 쪄낸 옥수수와 감자, 시원한 미숫가루를 내어 주면서 "느 집에 맛난 게 있을 텐데···. 할미 집엔 맨 농사지은 거뿐이니" 하셨지만, 참외와 수박도 유난히 단것만 골라내어 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할아버지의 외도로, 쓸쓸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당시 우리가 보기엔 근심 걱정 없는 정 많은 천사였다. 딸만 둘인 작은 할머니와 아들을 생산한 작은 집중 아들을 선택한 작은할아버지는 작은할머니께 경제적 지원마저 끊어 버리셨다. 쪼글쪼글 정감 있는 손이 이제 와 생각하니 두 자매를 홀로 키우시느라 거칠어진 손 매디 아니었나 싶다. 이맘때면 작은 감자알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기름 두른 솥뚜껑에 노릇노릇 탈 때까지 구워 주셨다. 세상 모든 감자 중 가장 맛있는 감자였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엄마가 튀겨주는 감자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했었다. 그 여름 얼마나 많은 감자를 튀겨 냈는지 모른다. 햄버거에 세트메뉴로 딸려 나오는 감자튀김보다 엄마가 만드는 감자튀김이 훨씬 맛있다는 말에 이 세상 감자 전부를 튀겨도 좋았다. 지금은 아이에게" 감자 튀겨줄까?"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댄다. 입맛이 바뀐 건지, 그때 너무 많은 감자를 먹인 탓인지.
전철을 타면서 오랜만에 전철 입구에 좌판을 펴고 감자를 파는 얼굴이 쪼글쪼글한 할머니에게서 감자 한 봉지를 샀다. 작은할머니가 노릇노릇 구워주던 크기의 작은 감자였다, 쪼글쪼글한 손과 자글자글한 얼굴 주름 때문에 문득 작은할머니 생각이 났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감자를 들고 전철에서 내리다가 아들의 전화를 받느라 손을 바꾸는 순간 비닐봉지 속의 감자들이 쏟아져 버렸다. 당황한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같이 내린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흩어진 감자를 줍고 있었다. 서너 번 손이 오가고 내 감자 봉지는 다시 채워져 있었다. 예전 같으며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꽁지 빠지게 도망가 버릴 상황이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태를 수습해 주는 행인들이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 사회는 전후 각박하던 시대와는 달리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웃들의 곤란을 모른척하지 않고 같이 해결해 주는 모습을 많이 본다. 제각기 저 살기에 바빠 이웃의 어려움을 돌볼 여유가 없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엊그제 강화도 여행길에서도 계단을 오르려 여행 가방을 들고 쩔쩔매는 선배의 여행 가방을 번쩍 들어 옮겨주는 청년이 있었다며 흐뭇해하던 선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오늘 “감자튀김 해줄까?” 아들에게 묻지 않고 알감자를 삶아 기름에 구어 놓겠다. 아들에게 작은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철에서 쏟아진 감자를 모아주던 따스한 손들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우리 아이가 작은 일이라도 곤란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스한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