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다시 읽기
2024년 10월 11일부터 11월 8일까지, 매주 금요일 15:00~17:00(총 5회), 서초문화 재단 1층 교육실에서 ' 피천득 다시 읽기' 세미나가 열린다. 010 8876 9025로 문자 접수하면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
금아 피천득 선생님은 우리 시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널리 알려진 대표 작가이다. 그의 수필집에서 '수필'이나 '오월 '같은 작품은 우리 세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구절쯤 외고 다닌 적이 있을 것이다. 딸 서영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당시 여고생들이 마음을 녹였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무뚝뚝했으니 피천득 님의 사랑에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아버지의 따듯한 사랑을 미루어 짐작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때 우리들의 부친 호칭은 아버지였다. 아버님 세대도 아니고 아빠 세대도 아니다. 가부장적 아버지들이 자녀에 대한 사랑을 절제하다가 그즈음 조금씩 표현이 시작되던 시기이다. 어린아이들은 아빠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했었다. 그를 부러워하던 친구가 한번 용기를 내어 아빠라고 부르려다 '아빠지' 하고 말았다는 말로 우리를 한동안 웃게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 피천득 선생님은 우리의 BTS요 한강이었다.
'피천득 다시 읽기'가 반가운 이유이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어, 10월 11일 피천득 다시 읽기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금아 피천득 선생 기념사업회, 서초 문화 재단 주관이고 심산문화 재단과 서울대 사범대학 동창회, 민음사, 범우사, 인풍의 후원이 있다.
김진모 사무총장의 사회로 류재우 회장의 인사말, 축사, 시 낭송이 있었다. 수고해 주신 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좋은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피천득 선생님의 제자들과 측근들에 의해 밝혀지는 피천득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보는 기쁨이 컸다. 더욱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피천득 선생님의 숨은 자취에서 맑고 밝은, 따스한 인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필가로 잘 알려진 피천득 선생님의 등단 작품은 사실은 시였다
차즘: 어머니에 대한 사랑(등단 작품)
마치고 기다림도/ 못 견딘다 하옵거든/ 말없이 찾는 심사/ 아는 이는 나올 것이/십 년은 더 살 목숨이/ 줄어든 듯하여라/ 모습이 그인가 하여/ 아마 그인가 가 따라갔더니/닥치니 아니로세/애꿎어 봣횡세라/아쉬워 정 가시랴먄/ 굳이 미워합니다./오늘 밤 달 뜨거든 그 빛을 타고 올라/ 이 골목 저 거리로 /두루두루 찾삽다가/살며시 님 자는 곁에 /내려볼까 합니다
절약과 여유가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피천득 님은 언어의 절약과 정서의 여유를 표현해 내셨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특히 피천득 선생님은 그 당시 번역가로도 활약을 하셨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알퐁스 도데의 ' 마지막'수업'은 우리 가슴에 애국심을 심어 놓은 명작품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선생님은 춘원 이광수 집에 살며 가르침을 받았고 일본이 아닌 상하이로 유학하게 되어 유럽 작품들을 번역을 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맑고 깨끗한 사람. 세속의 욕심이 없던 분이었다
"신기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지요.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지만 ···"
선생님의 겸손한 인품이 잘 드러나는 말씀이다, 평소 소원해서 서운하던 지인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어디 멀리 어린 왕자의 별에 갔다 왔어?" 하며 반기셨다 하니 인자하고 너그러운 분이셨다.
이 순간 (1969)
이 순간 내가. 별을 쳐다본 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 네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그들이 나를 잊고/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세미나에 참석한 덕택으로 뒤늦게 알게 된 피천득 님의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내가 피천득 선생님을 다시 읽게 된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살짝 패러디해본다
돌아오는 길 2018년 7월, 반포천에 만들어진 피천득 산책로이다. 같은 서울 하늘이건만 이제야 피천득산책로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참 무심한 세월이다. 이제라도 피천득 다시 읽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