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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퍼큐버 May 08. 2023

여러분들이 야숨을 즐기지 못한 이유

자유도를 즐기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나온 이후 나온 모든 게임 중 최고의 게임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 게임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 게임들 중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이하 야숨)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인의 취향과 맞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평단과 유저의 평가로 보면 이 게임이 비디오 게임 역사에 길이남을 대단한 갓겜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야숨의 특장점 중 하나로 제시되었던 것이 바로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였죠. 튜토리얼만 끝내면 그 뒤로 뭘 하든 아무 상관이 없고 A에서 B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버그성 조작이 없더라도 게임 시스템이 허락만 한다면 그 어떠한 방법도 정답으로 인정해 주는 자유도를 제공했죠. 그 때문에 사람들마다 플레이 방식이 모두 다르며 서로의 플레이를 보며 '저런 식으로도 플레이가 가능하구나'라는 감상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하지만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곧 게임 내에서 플레이 순서를 정해주지 않는다는 말이고 이는 길을 잃고 배회하는 유저들을 만들어냅니다. 닌텐도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픈월드의 자유도를 살리면서도 유저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하다 보면 마치 본인의 의도로 플레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작진들이 설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게 되는 식으로 가이드를 잘하고 있죠. 그 과정에서 게임 시스템에 대한 매우 많은 정보를 우리는 습득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대지, 게임 상의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만 해도 웬만한 시스템을 다 알 수 있죠. 이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게임 플레이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풀이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하게 될 많은 행동들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 원하지 않는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1. 시작하자마자 시커스톤 쪽으로 카메라를 전환하여 시커스톤을 얻도록 유도

2. 시커스톤에 가까이 가면 A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줌(대상과의 상호작용-A)

3. 시커스톤을 얻고 열린 문을 통해 나가면 있는 보물상자를 통해 방어구 획득(보물상자 안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있음)

4. 나무 박스로 다가가면 초록색 스태미나가 나오며 밀 수 있고 오크통은 잡고 던질 수 있음(스태미나 게이지의 존재, 스태미나를 소모해 물체를 밀 수 있음, 물체를 잡고 내려놓거나 던질 수 있음)

5. 주황색으로 빛나는 곳에 시커스톤을 인식해 문 개방(주황색과 시커스톤 상호작용 가능)

6. 바로 앞에 나오는 물을 밟고 지나감(물은 밟아도 됨)

7. 벽을 등반(벽을 등반할 수 있으며 스태미나 소모)

8. 오프닝 화면 이후 시점을 전환하여 수수께끼의 노인에게 가도록 유도

9. 길에 반짝이는 나뭇가지 획득(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반짝거림)

10. 앞에 있는 나무를 등반하거나 점프로 사과 획득(등반이나 점프로 공중에 있는 아이템 획득 가능)

11. 모닥불에 있는 구운 사과 획득(식재로 직화구이 가능, 직화 시 하트 회복량 증가)

12. 횃불 획득(불을 온도조절에 사용 가능)

13. 오른쪽 연못에 꽂힌 칼을 얻기 위해 다이빙하는 과정에서 코로그 획득(코로그의 존재, 물에 빠지면 수영)

14. 미션 수령

15. 보코블린 등장 및 전투(몬스터 존재, 무기 파손, 몬스터의 무기 루팅 가능)

16. 탑 활성화(탑을 활성화하면 지도 언락)

(17. 탑의 윗부분으로 갔다가 당황(퀘스트 마커에 고저차가 표현되지 않음)


이 모든 과정이 겨우 첫 번째 퀘스트를 깰 때까지 얻을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 아직 맵 전체에 120개나(DLC 구매 시 136개)나 흩뿌려진 사당에 대한 정보와 퀘스트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중간에 빼먹은 게 있을지도 모르고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분들이 비슷한 순서로 플레이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우 많은 정보를 체득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여 패러세일을 얻고 신수를 깨서 최종보스를 잡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게임을 하다가 자유도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된다면 '이쯤 했으니 그냥 다른 거 하지 말고 끝판 깨러 가 볼까?'와 같은 생각도 하게 되는 거죠. 야숨의 제작진은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시선을 유도하고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적당히 길을 잃을 때쯤 탑으로 향하는 퀘스트를 제공하여 퀘스트를 클리어하게 하여 지도를 언락하게 했고 튜토리얼 이후로도 적당한 시점에 메인 퀘스트를 던져주면서 게임의 전반적인 특징을 모두 이해하기 전까지 길을 잃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이 제공하는 정보를 플레이어가 받아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지식인 등지에서 보면 상당히 많은 분들이 패러세일 획득 이후 다른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도 언락을 어떻게 하는지를 물어봅니다. 하지만 위의 과정에 따르면 탑을 활성화하는 것을 통해 지도가 언락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어야 하죠. 이분들은 왜 이 정보를 알지 못하는 걸까요? 게임을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잊어버린 걸까요? 저는 그런 게 아니라고 봅니다. 뇌피셜이긴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수동적인 게임 태도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게임을 매우 수동적으로 플레이합니다. 그저 시키는 것을 하고 시키는 것이 끝나면 그것에 대해 잊어버리죠. 이런 분들에게 '시커 스톤이 가리키는 곳'이라는 퀘스트는 탑을 활성화하면 지도가 열린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저 퀘스트 1에 해당할 뿐이고 퀘스트를 클리어했더니 보상으로 지도를 열어준다는 것에서 끝나게 되죠. 탑을 여니까 지도가 열렸으니 다른 탑을 찾아서 다른 곳의 지도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지도가 열렸으니 다른 지역의 지도를 얻기 위해서 다른 퀘스트를 클리어해야겠지? 가 되는 겁니다. 게임은 그 다른 퀘스트가 다른 지역의 탑을 여는 것임을 가르쳐줬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죠.


자유도가 높은 오픈월드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게임이 제공하는 사소한 정보조차도 중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정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바탕이 되어야 하니까요. 길이 하나밖에 없다면 정보가 있든 없든 그냥 보이는 길로 달리면 되겠지만 오픈월드 게임은 그렇지 않죠.


저는 실제로 야숨을 초보 게이머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초보 게이머가 게임을 능동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잘 집어넣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게임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걸 하면 뭐라도 도움이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만이 이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야숨을 포함한 다른 오픈월드 게임도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할 겁니다. 야숨을 즐길 바에는 꿈섬이나 스소를, 언어의 장벽을 무시한다면 온라인 추가팩을 사서 신포나 시오를 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겁니다. 


이번에 나오는 왕눈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정확히는 야숨보다 더 많은 것들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생각하여 능동적으로 해결해야 할 겁니다. 자유도를 즐길 자신이 없다면 야숨, 왕눈 모두 사지 마세요. 사고 나서 본인이랑 안 맞다고 중고로 팔아치울 바에 처음부터 구입하지 않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시간낭비도 적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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