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정의조차 모르는 그들
아시안게임이 개막한지도 며칠이 지났는데 아시안게임 관련 무언가를 볼 때 꽤 자주 기분나빠지는 경우가 있어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야구 이야기냐고요? 물론 야구가 레저라고 까인 역사는 오래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닙니다.
까놓고 말해보죠. 사격이 스포츠인가요? 그저 총구를 과녁에 조준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끝 아닌가요? 이 따위가 스포츠? 개나소나 다 스포츠네요?
이런 말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겁니다. 사격이 스포츠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e스포츠는 왜 스포츠여서는 안 되는 거죠? 사격이 e스포츠에 비해서 뭐가 월등하길래? 제대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스포츠의 정의를 살펴보죠. 그냥 스포츠 그 자체의 뜻만 보면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인이나 단체끼리 속력, 지구력, 기능 따위를 겨루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따위'라는 말이 들어있으니 속력, 지구력, 기능 말고 다른 것도 겨룰 수 있다는 말이겠죠?
단어의 원형인 sport의 뜻은 운동/경기라고 정의되어있죠. /가 있는 거 보니까 그것이 꼭 운동일 필요도 없군요. 아 경기는 뭐냐고요? 일정한 규칙 아래 기량과 기술을 겨룸. 또는 그런 일입니다. 여기도 그것이 운동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걸 보면 e스포츠를 비롯한 대부분의 마인드스포츠를 스포츠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정의를 보면 꼭 땀을 흘릴 정도로 움직여야 한다거나 그런 거 전혀 없거든요. 야구는 당연한 거고
국내에서 통용되는 뜻은 이게 아니라고요? 그러면 대한민국 법률에서 규정하는 스포츠를 보죠. 스포츠진흥법 제2조 1항에 따르면 “스포츠”란 건강한 신체를 기르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며 질 높은 삶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행하는 신체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문화적 행태를 말입니다. 사격의 예시를 다시 한 번 들어보죠. 사격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신체활동을 스포츠로 정의할 수 있다면 사격이 e스포츠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신체활동을 요구한다고 보는 게 아닌 이상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봐야할 겁니다.
왜 e스포츠만 이렇게 부정적 인식이 높을까. 사람들이 스포츠의 정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바탕에는 아직도 게임 하대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스포츠가 스포츠가 아니라는 특별한 근거가 있다기보다 그냥 '게임 따위가 어딜 감히 전통적이고 신성한 스포츠에 끼어들어!' 같은 선민사상. 그런 거라고 봐요. 야구도 마찬가지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에 들어가도 되냐 마냐는 다른 문제죠. e스포츠이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문제점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도 압니다. e스포츠에 사용되는 게임들은 엄연히 특정 회사의 소유물이라는 것. 수명이 있어 몇십년씩 종목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 게임사의 패치로 게임의 룰과 유불리가 시도때도없이 바뀔 수 있다는 점 등 문제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e스포츠는 스포츠가 될 수 없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하죠. 스포츠를 정의하는 데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e스포츠는 그냥 e스포츠이고 e스포츠 나름대로 발전하면 된다는 주장. 개인적으로 이건 너무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특히 대한민국 현실은 그렇지 않죠.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것 자체 뿐 아니라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대한민국 현실이잖아요.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논리 같은 건 필요가 없죠. 그냥 열심히 욕을 하면 그만입니다. 동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저는 아주 큰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e스포츠가 스포츠로 인정받는 데 집착할 필요가 어느정도 있다고 봅니다.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그들의 선민사상을 깨부수지 않으면 인류문명이 멸망할 때까지도 이 논쟁이 계속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