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를 소재로 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좀비버스 시리즈는 조금 특별합니다. 예능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스케일이 매우 큽니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류애, 협동 등등 느낄 수 있는 점들이 많죠. 하지만 단점도 만만찮게 많습니다. 이를 단점으로 보는 지의 여부는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좀비버스 시리즈가 가지는 전반적인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이 뒤로는 좀비버스 시리즈의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편의상 첫 작품을 시즌1, 두 번째 작품인 뉴 블러드는 시즌2로 표기합니다.
좀비버스 시리즈는 뭐랄까... 좀비물 게임을 보는 듯합니다. 게임 중에서도 오픈월드는 아닌 어드벤처 게임. 그중에서도 그다지 치밀하게 만들어지지는 못 한 게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상황마다 퀘스트가 주어지고 그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구성입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방법 자체는 여러 가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처럼 되어있으나 실상은 특정 방식의 플레이가 강제되는 경우가 많으며 퀘스트의 개연성이 부족한 점도 보입니다. 실제 좀비가 아닌 좀비를 연기하는 연기자를 상대한다는 점에서 좀비를 직접적으로 공격해서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더 합리적인 플레이 방법이 보이거나 퀘스트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상황도 보입니다. 시즌 1 중반부 공장 퀘스트에서 덱스가 줄을 직접 올라가면서 전원생존에 성공한 것처럼 일부 상황에서는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도 나오긴 하지만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시즌 1 마지막 장면에서 사실 노홍철이 어떻게든 좀비 둘의 입만 막았으면 탈출할 여지도 충분했다고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죠. 시즌 2 양양 탈출 직전 모텔 옥상에서 진행되었던 퀘스트는 누구 하나 걸리기 전까지 절대 끝나지 않게 설계되었는데 생각해 보면 중간에 뜬금없이 닭이 날아오는 작위적 연출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충분히 전원생존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 퀘스트이기도 합니다. 좀비가 그다지 많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좀비에게 발각된 게 츠키가 아니라 데프콘이었다면 탈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게 게임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죠. 플레이 방식을 제한할 거였다면 보이지 않는 벽이 아닌 실제 벽을 이용했어야 몰입이 더 잘 되었을 것 같습니다.
개연성뿐 아니라 설정오류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즌 1을 통해 알 수 있는 좀비버스 시리즈의 좀비가 보여주는 특성은 청력이 둔감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보이지만 않으면 들키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시즌 2에 가서는 상황마다 제각각입니다. 양양 클럽의 좀비들은 아무리 봐도 소리에 반응한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고 지하철 역 탈출 때 청소하던 좀비들도 불 다 켜져 있는 곳에서 좀비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마치 어두운 곳에 있어서 시각까지 퇴화했다는 것처럼 설명이 나옵니다. 설정이 마음대로 뒤바뀌면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되어야 하는데 충분히 되는 느낌은 아니죠. 마지막에 나온 안드레야 말로 설정파괴의 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좀비사태에서 어떤 좀비가 직진본능을 보여줬다고 그런 퀘스트를 만든 건지 모르겠네요. 스리슬쩍 추가된 좀비가 생전에 했던 행동에 의해 행동양식이 바뀐다는 설정도 퀘스트의 난이도를 높이기 위한 무리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도 제대로 못 여는 좀비가 파쿠르는 왜 해요. 물론 양양에서 좀비들이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권은비는 물리든 굶어 죽든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테니 어떻게든 탈출시킬 명분이 필요하긴 했지만 본인들이 만든 설정보다 퀘스트가 먼저였던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NPC들의 행동도 다소 작위적입니다. 친구, 가족 등이 좀비에 물렸지만 버릴 수 없어 치료제 개발의 희망을 갖고 어떻게든 데리고 다니려는 NPC들 중 그 좀비들이 다른 사람들을 물지 못하도록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한 NPC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 탈출시켜 놨더니 단체로 아프다고 드러눕는 것을 보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요약하자면 좀비버스 시리즈는 마치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겼지만 실상은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으로 설정된 특정 퀘스트라인을 제작자가 의도한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진 선형적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오픈월드의 탈을 썼지만 실상은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명확하게 정해져 있죠.
이런 연출은 사실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좀비버스의 메인 PD인 박진경 PD가 MBC를 떠나기 전에 만들었던 언리얼 버라이어티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가 있죠. 대놓고 언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박아놓은 만큼 제작진의 개입이 아주 많았던 예능으로 기억하는데 이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니아는 실패하고 이건 성공한 이유는 두니아는 온 가족이 볼 만한 시간대에 지상파로 송출된 예능을 중장년층이 이해하기 어려웠다면 좀비버스는 장르물인 데다 OTT로 풀어버려서 마니아층을 공략한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보면서 대탈출 좀비 세계관이 많이 생각났습니다. 예능에서 좀비와 관련된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점이 비슷한데 대탈출이 여러모로 참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4개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동안 설정이 파괴되지도 않았고 특정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도 제작진이 의도한 게 아니라면 다른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주변환경이 잘 갖춰졌습니다. NPC들의 행동도 좀비버스보다 덜 작위적이고요. 리코더로 순정 연주하면 좀비가 무력화된다는 설정은 그냥 이스터에그 수준이지만 이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라는 점은 확실하게 알고 갈 수 있습니다. PD가 이런 거에 진심이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참 치밀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시즌3을 기다립니다. 이런 장르 좋아하거든요. 설정이 작위적이네 뭐네 하면서도 결국은 봐요. 만들어지긴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뭐 어떻게든 되겠죠. 기다릴 게 많네요. 대탈출 5, 여고추리반 4, 크라임씬 넷플릭스판, 미스터리 수사단 2, 그리고 좀비버스 3까지. 볼 게 많아서 좋긴 하네요.
참 두서없이 썼죠. 여러분들도 본인만의 평가를 하면서 콘텐츠를 즐기시겠죠? 그렇게 보면 됩니다. 정답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