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깰 시간이라고 하더라
뉴진스. 2021년 말부터 시작된 초대형 걸그룹의 데뷔 러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룹입니다. 민희진이라는 이름값 높은 프로듀서와 하이브라는 이름값 높은 회사의 콜라보로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 관심은 성적에서 바로 드러났죠. 뉴진스 때문에 만들어진 밈도 많고 4세대 걸그룹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과거의 영광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아니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죠. 민희진과 하이브 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파생된 어도어와의 계약 분쟁에서 패했습니다.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긴 하지만 본안 소송을 이길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의신청은 했지만 뉴진스 측이 계약해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주장한 11가지 중 단 하나도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의신청을 한다고 결과가 크게 달라질 지도 의문입니다.
뉴진스는 너무 허술했습니다. 이 정도로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계약서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들먹이고 당사자도 아닌 제삼자를 끌어들였으며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랍시고 내민 증거가 전후사정을 붙여서 오히려 어도어 측 주장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국정감사까지 나가게 했던 '무시해' 발언은 그 존재여부조차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고요.
전적으로 뉴진스 측에 불리합니다. 어도어 측에 불리한 만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고발들은 전부 인정되지 않았고 오히려 민희진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죠. 민희진이 어도어에서 해고될 당시의 여론은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때 밖으로 보이는 여론 때문에 본인의 의견을 밝히지 못했던 소신 있는 사람들이 이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진스 측은 마치 당연히 소송에서 이길 것처럼 행동합니다. 법원의 판단이 어도어에 돌아가라는 것이었는데도 당당하게 어도어를 무시하고 독자노선을 탔습니다. 물론 정말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면 계약해지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신뢰관계 파탄은 오히려 어도어가 꺼내야 할 것 같은데 어도어는 계속해서 타협을 시도하고 있죠. 이런 걸 보면 뉴진스 측은 그냥 어도어를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냥 나가고 싶으니까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고 우기면서 법원이 받아들여주길 원하는 그런 상황 말이죠.
뉴진스 사태의 핵심은 제가 생각하기에 '사회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 갑이 을을 처참하게 박살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갑의 횡포가 아닙니다. 하이브가 소송에서 패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을이 자기 마음대로 계약서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독자활동하면서 수익을 고스란히 챙겨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됩니다. 을의 횡포가 시작되는 거죠.
한국의 현실이라더군요. 맞습니다.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한국의 현실이 옳아 보입니다. 한국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당신들이 틀렸습니다. 적어도 현재 대중에게 공개된 것들을 근거로 해석하면요. K팝 업계 당연히 문제 많죠. 문제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계약을 자기 맘대로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꿔야 할 부분은 바꿔야 하지만 현재 소송에서 그것이 쟁점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가처분 결과가 나온 이후 자기들이 불리해지니까 한국어 입장 발표는 생략하고 해외랑만 영어로 소통하려 하더라고요. 숫자도 많고 정보는 우리보다 훨씬 제한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을에 열광하고 갑을 적대하는 해외에 본인 목소리를 내면 마치 우리 편이 많아진 느낌이 들겠죠. 하지만 법은 인기를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죠.
저는 민희진과 하이브만이 쟁점이었던 당시부터 참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뉴진스가 타 그룹들에 비해 홍보를 적게 받았다는 건데요. 방송 활동이 하이브의 입김 때문에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민희진 측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뉴진스는 제가 보기에 100% 홍보로 뜬 그룹입니다. 뉴진스가 다른 그룹보다 나은 게 뭐가 있나요. 르세라핌보다 비주얼이 뛰어나나요 엔믹스보다 가창력이 뛰어나나요 아이브보다 예능감이 뛰어나나요. 뉴진스보다 살짝 먼저 데뷔한 이 그룹들에 비해 나은 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멤버들 능력치를 보면 케플러랑 비교해도 확실하게 더 낫다고 이야기할 게 없어 보여요. 다 평타는 치지만 그렇다고 대단하다고 할 것도 하나 없는 그런 그룹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멤버들을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룹인 것처럼 이미지를 바꿔놓은 건 누구인가요. 하이브 아닌가요? 그런데 하이브가 뉴진스를 차별했다는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뉴진스 멤버들은 이 모든 게 민희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민희진이 시켰다고 주장하는 건 오히려 뉴진스 멤버들을 도와주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걸 거부한다는 건 민희진을 정말 많이 신뢰한다는 걸로 보입니다. 비정상적입니다. 아무리 뉴진스를 만들고 키운 게 민희진이라고 해도 결국 한 명의 프로듀서일 뿐입니다. 멤버들이 처음부터 어도어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요.
완전 뇌피셜이긴 합니다만 제 나름의 시나리오를 적어보면 민희진이 처음부터 그냥 말 잘 듣는 어리숙한 애들 몇 명 모아서 그룹을 만들어놓을 생각으로 회사에 있는 연습생 중 고1, 중3, 순수외국인 고3, 설날을 영어로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하는 호주 한국 복수국 고2, 한국인이면서 칼국수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고3을 선택했을 뿐인 거죠. 디렉터의 의견에 반대할 만한 멤버가 보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강압적인 관계여서가 아니라 그냥 아는 게 없어서 어른이 말하면 다 맞는 줄 아는 거죠. 민희진이라는 교주를 따르는 신도인 거예요. 실력이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니 어려운 곡으로 활동을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이지리스닝을 선택한 것일 뿐인 거고요.
It almost feels like Korea wants to turn us into revolutionaries. 한국은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뉴진스 멤버들이 직접 한 말이죠. 혁명.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을 말합니다. 혁명의 정의와 현재까지 밝혀진 정보를 근거로 생각해 보면 뉴진스 멤버들은 혁명가가 맞습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도 계약을 파기하고 싶으면 파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는 거니까요. 그냥 당연한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일은 매우 큰 일입니다. 성공하면 혁명이죠. 하지만 실패하면 반역입니다.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했으면 고래 싸움에 등 터져버린 새우 포지션에서 동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누구라도 일찍 싹싹 빌었으면 키나처럼 그룹도 지키고 법적으로 문제없이 활동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왔습니다. 이제 와서 어도어로 돌아온다고 한들 예전과 같은 활동은 힘들 겁니다. 찾아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나가버리면 천문학적 위약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뉴진스가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1.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계약해지를 인정받고, 2. 여론을 뒤집으면서, 3. 위약금도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것. 이 중 단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하면 뉴진스 입장에서는 실패입니다. 그렇게 원하던 계약해지를 받아내고도 아직까지 데뷔를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인 어블룸을 보세요. 뉴진스 멤버들이 NJZ로 활동하게 된다면 NJZ의 미래는 어블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트럭시위가 왔습니다. 어도어와 대화를 하라는 버니즈의 일침이 들어있습니다. 뉴진스의 소송을 돕겠다는 버니즈와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대회를 하라는 버니즈. 어떤 버니즈가 진짜일까요. 둘 다 버니즈라면 누가 더 현명한 버니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