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헛소리는 작작 좀
2025년 4월 21일. K리그 공식 유튜브에 하나의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만우절 기념으로 올리려 했다가 연기되었던 야구 대 축구 컨텐츠.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 컨텐츠 같긴 했는데 올리자마자 K리그의 치부가 모두 드러나는 완벽하게 실패한 컨텐츠가 되었습니다. 주요 비판점은 야구에 대한 내려치기. 야구 내려치기를 K리그가 직접적으로 주도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지는 이 영상에 수많은 야구팬들이 분노했고 K리그에 대한 비판과 조롱으로 댓글창은 가득 찼습니다. 하필 야구 없는 월요일에 올렸고 하필 다음날 있었어야 할 야구 경기 중 몇 경기가 취소되었고 하필 취소된 경기가 KBO 대표 인기팀 기롯삼한 경기였다는 점이 심심한 야구팬들의 화력을 더욱 집중시켰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면서 느낀 점은 댓글에 가득 찬 비난과 조롱은 영상의 내용에 비해 과하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실제로 만우절에 올라왔다면 대충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상은 만우절에 올라오지 않았고요. 웃고 넘길 수도 있었던 내용을 야구팬들이 이 악물고 진지하게 받아친 것은 야구팬들이 진지충이어서가 아니라 K리그,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과 축구계 인사들이 판을 깔아놨기 때문입니다. K리그 정상화를 위한 다크나이트인가 싶을 정도로 K리그 컨텐츠기획팀은 리그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삽질을 거듭했죠.
야구팬들이 진지하게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볼까요. 전 현직 축구계 종사자들의 야구에 대한 비방은 KBO가 출범하기도 이전인 1981년부터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심심하면 축구계 인사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야구를 비하하기에 바빴고 야구는 심심하면 얻어맞았죠. 대부분은 근거도 없는 거짓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순수 음해이거나 축구계도 딱히 그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요. 야구는 레저라는 이야기나 야구는 경기 도중에 짜장면 먹는다는 이야기는 신태용이 양준혁과 친분을 바탕으로 양준혁 앞에서 놀려먹는 과정에서 나온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신태용과 양준혁 모두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축구계가 야구를 비하하는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죠. 여기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수도 없는 야구 비하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야구팬들은 야구와 축구 비교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주제 나올 때마다 레저드립과 짜장면 드립을 들어야 하니까요. 이를 포함한 온갖 근거도 없는 이야기로 얻어맞기를 수십 년. 히스테리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죠. 정작 야구계가 축구를 공식적으로 비하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야구팬들이 이 주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든 건 축구계입니다. 팬들도 아니고 전 현직 종사자들이요. 신태용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본인은 분명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본인의 발언이 야구 비하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으니.
이렇게 깔린 판에 K리그가 기름을 부었죠. 주제부터 야구 VS 축구로 잡아놓고 선공개한 쇼츠에서 짜장면 드립을 대놓고 내보냈습니다. 이게 팩트인지 확인할 생각은 1도 없었던 것 같고 이미 짜장면 드립에 질린 야구팬들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순수하게 야구와 축구를 비교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고 본 영상이 공개되기 전부터 야구팬들은 분노가 올라온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본 영상이 올라왔으니 반응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본 영상에서도 논란의 부분은 삭제되지 않았고 심지어 영상 초반부에 나왔죠. 그 뒤로 좀 정상적인 내용이 나온다고 해도 야구팬의 분노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줄어들 수 없습니다. 야구 비하발언으로 어그로를 끌고 그 비하발언을 본 영상에서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제발 욕 좀 해달라는 선언처럼 보입니다. 그 뒤 내용이 싹 다 정상적인 내용이었다면 모를까 야구 관계자들을 노래방 사장님 정도에 비유하는 그 정신머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네요. 아래쪽에 모바일로는 있는지 없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출연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정도의 문구로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희망은 영상을 잘 만들고 나머지 내용이라도 좋아서 몇몇 비하발언만 제외하면 괜찮은 영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건데... 그것도 제대로 실패했죠. 출연자 검증을 어떻게 했길래 출연자들이 이 정도 발언밖에 하지 못 하나 싶을 정도로 컨텐츠 참가자의 발언은 수준이 너무 낮았습니다. 영상은 20가지의 주제를 놓고 야구와 축구 중 무엇이 더 나은가에 대한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토론 참가자며 토론의 승패를 가르는 진행자의 수준마저 너무 처참했습니다. 제가 축구대표로 나가도 저거보다는 말을 잘하겠다 싶을 정도로 빈약한 근거들이 양측 모두에서 난무했고 진행자의 승패 판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10분 남짓의 분량에 20가지의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생략된 주제도 많았고 각 주제에 대한 내용은 너무 짧게 지나갔죠. 주제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 반박 근거가 확실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박하지 못하는 경우, 근거 자체가 억지로 짜내서 만들어진 경우들이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토론 참가자들이 이 컨텐츠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네요. 그런 와중에 짜장면 드립을 살릴 생각을 하는 건 정상적인 사고로는 납득하기 어렵고요. 자를 거면 짜장면 드립이랑 노래방 사장님 드립을 잘랐어야죠? 세금리그 소리 안 듣고 온갖 사건사고 파헤쳐지기 싫으면 말이죠.
슬픈 건 이렇게 어그로를 열심히 끌어놓고 나온 조회수가 영상 업로드 후 만 일주일이 지나기 좀 전인 현재 기준 10만 회를 겨우 넘었다는 것, 그리고 K리그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추천순 댓글은 K리그에 우호적인 댓글로 채우지 못 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시간 기준 4월 26일에 올라온 롯데 VS 두산 경기 전체 하이라이트 조회수가 9.9만, 롯데 VS 두산 8회 초 롯데 역전 순간 하이라이트 조회수가 11만, kt VS 한화 9회 풀영상 무해설본 조회수가 14만 인 걸 생각하면 각 잡고 만든 영상 조회수, 그나마도 야구팬들이 열심히 봐줘서 근래 올라온 영상 중 압도적 조회수 1위를 달리는 영상의 일주일치 조회수가 올라온 지 고작 이틀밖에 안 된 경기 하이라이트만도 못 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게 K리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구독자 수는 K리그가 KBO보다 많은데 그 많은 구독자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조회수가 안 나오는 상황에서 야구가 없는 월요일에 야구 비하 발언이 담긴 영상에서 진짜 비하 발언만 잘라서 쇼츠로 먼저 올리고 그 발언을 삭제하지 않은 본 영상을 그대로 올린다는 것.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야구팬들을 일부러 긁어서 조회수를 높이려는 수작으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근거가 있을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야구계가 이 주제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그동안 축구계가 지속적으로 근거 없는 야구 비하를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이때까지 정말 많이 욕을 먹고 화제가 되고 나무위키에 박제되고 이스타TV와 이전에 별도의 논란이 있었던 이주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비하발언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최근에 사과도 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러고 있는 게 축구계의 현실 아닐까요. 야구팬들은 가만히 있는 축구계를 비하하지 않습니다. 축구계가 야구를 비하하는 게 목격되면 나타날 뿐이죠.
축구는 분명 세계 최고의 인기스포츠이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대표 경기의 화제성은 축구가 역시 압도적입니다. 야구팬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로 가면 K리그의 인기는 KBO에 비해 너무 많이 밀립니다. K리그 팬들은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K리그가 잘 되는 것은 야구팬들에게 딱히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야구는 야구고 축구는 축구니까요. 야구에서 사건사고가 터진다고 KBO 팬이 갑자기 K리그 팬이 되지 않습니다. K리그의 성장은 K리그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 타 종목을 깎아내린다고 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발 근거 없는 야구 혐오를 멈춰주세요. 야구팬들은 축구계가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