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이라면 조금만 더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 글을 적게 된 것은 제 브런치를 구독해준 한 명의 구독자 때문입니다. 큐브를 맞출 줄 아는 분이던데 그 분의 브런치에서 본인이 스피드솔빙을 더 잘하기 위해 연습할 것을 적어놓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 컬러 뉴트럴이 있었습니다. 용어는 모르는 것으로 보이나 내용은 분명한 컬러 뉴트럴이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컬러 뉴트럴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한 기록대로 보였고 댓글로 조언을 할까 하다가 너무 오지랖 같기도 하고 이 자체로 글의 소재가 될 것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글을 써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구독자를 위해서 쓴 글이기도 하네요. 혹시 이 글도 보신다면 제 유튜브도 구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컬러 뉴트럴. 과거에 국내에서 멀티 크로스라는 불완전한 용어로도 불렸던 스킬입니다. 이 스킬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떤 색으로든 큐브 맞추기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3x3x3 큐브에서 CFOP 해법을 사용할 때를 예시로 들면 크로스를 맞출 때 흰색 하나가 아닌 빨간색, 초록색 등으로도 큐브를 맞추기 시작할 수 있으면 컬러 뉴트럴 사용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컬뉴로 줄여 부르기도 하고 해외에서는 CN이라고 합니다.
컬러 뉴트럴의 장점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나옵니다. 더 많은 상황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할 때 더 쉽게 1단계가 끝나는 상황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크로스를 또 예시로 들어보면 CN 사용 시 크로스의 최적 회전수는 평균 4.81회전이 나옵니다. 1색 크로스를 하면 5.81회전이죠. 1회전 차이이긴 하지만 이 자체로도 크로스 다음을 계산하는 데에 많은 이점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쉬운 크로스가 나올 확률 자체가 크게 높아지죠. CN 사용 시 크로스가 4회전 이하로 해결될 수 있을 확률은 29%가 조금 넘습니다. 1색 크로스를 할 경우 5%가 채 안 되죠. 약 6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겁니다. 크로스에 적은 회전수를 쓸 수록 더 많은 F2L 조각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고 당연히 이는 스피드솔빙에 큰 이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구급 선수들이 전부 CN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색과 그 반대 색으로만 CN이 가능한 DCN 사용자도 많으며 일부는 거의 대부분의 솔빙은 한 가지 색으로만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완전한 CN 사용자에 비해서 무조건 느린 기록만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CN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CN을 사용한다면 6가지 색을 모두 보면서 가장 1단계가 쉽게 끝나는 경우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이후를 내다볼 수 있으면 그 이후까지 고려해야겠죠. 6가지 중 가장 좋은 상황이 무엇인지 따로 판단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한 가지 색만 쓸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없습니다. 내가 할 것은 정해져 있으니 그것만 보고 그 이후를 계산해나가면 됩니다. 어쩌면 CN에 비해 더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장 좋은 스타팅 지점을 찾는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CN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거죠.
또 다른 단점은 CN이 아니었던 사람이 CN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색의 조합을 원래 사용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기록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F2L 효율성을 높이고 미처 외우지 못했던 공식을 외우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매우 오랫동안 세계 큐브 1위를 지켰던 펠릭스 젬덱스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CN의 가치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결론은 제가 위에 적은 것과 비슷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위에 주저리주저리 적은 주장과 근거가 모두 젬덱스의 포스팅에서 왔죠. 원본 포스팅 또한 제 브런치에 번역해놓았습니다. 젬덱스는 처음부터 CN을 사용한 모태 완전 CN 사용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에게 CN 사용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다른 걸 연습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시킵니다. CN은 분명 좋은 스킬이지만 필수라고 할 스킬은 절대 아닌 것입니다.
제가 3x3x3 큐브는 평균 11초 정도 나오는데요. 저는 흰색-노란색 DCN입니다. 이마저도 3x3x3 큐브 한정이고 그 이상의 빅큐브에서는 무조건 흰색 크로스로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아래의 설명과 같습니다.
2x2x2, 피라밍크스, 스큐브
완전한 CN입니다. 조각의 수가 적어서 생각할 것이 적기 때문에 CN에 무리가 없습니다.
3x3x3
DCN이긴 하지만 흰색 크로스를 우선적으로 봅니다. 노란색 크로스의 솔루션이 흰색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오거나 XCross 등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흰색을 사용합니다.
4x4x4
센터는 DCN, 크로스는 흰색입니다. 흰색, 노란색 센터를 맞출 때는 순서를 신경쓰지 않지만 3크로스 단계부터는 무조건 흰색을 우선합니다. 3크로스 이후에는 센터 색을 신경쓰지는 않습니다.
5x5x5, 7x7x7
센터는 완전히 CN이지만 프리슬라이스에서는 흰색 또는 노란색만 위로 두고 하며 크로스는 무조건 흰색입니다.
6x6x6
센터는 CN이 가능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서 DCN입니다. 프리슬라이스에서는 흰색 또는 노란색만 위로 두고 하며 크로스는 무조건 흰색입니다.
메가밍크스
흰색으로만 시작합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메가밍크스에서 CN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퀘어-1, 클락
스퀘어-1은 애초에 솔빙 방향이 정해져있다시피 한 퍼즐이고 클락은 앞면과 뒷면의 상황판단 방법이 완전히 동일해서 CN이냐 아니냐를 거의 따지지 않습니다.
네. 그렇고요. 결론은 CN이 필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내가 큐브를 느리게 돌리지는 않는지 상황판단에 오랜 시간을 쓰지는 않는지, F2L 솔루션은 효율적인지, 더 외울 공식은 없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기록 향상에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