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어느 날 연락이 끊겼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마지막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다음 일정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부모님께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식. 명확한 인사도, 마무리도 없이. 그렇게 끝난 수업이 초창기엔 대부분이었습니다.
4년쯤 지난 지금, 그 아이들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큐브를 끝내 한 번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기록을 따로 해두지도 않았고, 워낙 짧게 스쳐간 인연들이라. 드문드문 남은 기억을 건드려보면 흐릿한 장면 하나둘이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그중 하나. 아이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서 가르치던 방식을 바꿨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이전에 배운 방식대로만 하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하지만 저는 이미 다른 방법을 선택한 상태였죠. 아이는 제가 처음 가르쳐 준 준 방법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으로도 여전히 풀지 못하면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강사와 수강생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요즘 과외를 하면서 깨달았던 그 사실을 이때 이미 경험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목표와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을 무시한 채 무작정 공식만 사용하는 것 말이죠.
그나마 조금 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2×2×2 큐브를 성공한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습니다. 큐브가 맞춰졌을 때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크게 기뻐했다면 기억에 남았을 테니, 아마 덤덤했겠지요. 하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다음 수업도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3×3×3도 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확신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3×3은 2×2×2와 결이 다릅니다. 모든 조각이 같은 특징을 지니는 2×2×2와는 달리 3×3×3은 조각 하나하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아이는 거기서 막혔습니다. 십자가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연락이 끊겼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아이들이 큐브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온전히 맞는 판단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진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큐브는 버거운 것이었고, 저는 그 버거움을 무관심으로 읽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결국 내가 해준 건 큐브 가지고 한 시간 놀아준 것밖에 없었다고, 그때 어딘가에 썼다가 지운 적이 있습니다. 과외 수주에 영향을 줄까 봐 지웠던 글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솔직한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큐브를 기억이나 할지, 그때 그 시간을 어떻게 떠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아이들은 저를 기억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