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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가기 Jun 28. 2022

오래된 문방구

오랜만에 본가에 들러 동네 마트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다. 장을  보고 마트를 나오는데, 한쪽 구석에 문방구가 있었다. 왠지 모를 낯섦에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한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학교 앞 상가에 있던 문방구는 늘 어린이들이 몰려드는 놀이 공간이었다. 등교할 때 알림장이나 미술 시간에 필요한 물감 같은 준비물을 사기도 했고, 주말에는 문방구 앞에 마련된 미니카 트랙에서 미니카 경주를 구경했다. 같은 반 친구 생일이면 그 문방구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애들이랑 안 겹칠까’ 생각하며 선물을 고심해서 고르기도 했고, 100원짜리 사탕을 사서 먹다가 혀가 파랗게 변하기도 하고, 용돈을 모아서 꼭 사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기도 했다. 주인아저씨는 대체로 친절한 사람이었고 나에게 몇 번 인사도 해주었지만, 누군가 물건을 훔쳤다거나 하면 화를 내기도 했다. 학교에서 집에서 돌아올 때면 꼭 한 번씩 들려 무슨 물건들이 있는지 구경했다.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물건들이 선반과 벽과 바닥에 잔뜩 늘어져있는 그 공간은, 작고 어린 나에게 굉장히 커다랗고 신기한 보물창고였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갑자기 다가온다는 것은 사람을 흠칫 놀라게도 한다. 그 문방구의 모습이 그대로 있을까, 주인아저씨가 나를 알아보지는 않을까, 들어가서 구경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그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마 여럿이 나처럼 그 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늘 감정의 동요를 같이 가져오는 법이니까. 고민을 하다 형광펜이 마침 필요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형광펜을 핑계 삼아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문방구 아저씨는 난로 앞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것을 빼고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공책과 색종이, 필통, 가방, 군것질거리까지 물건들은 똑같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샅샅이 둘러보았다.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을 보고는, 어렸을 때 이런 필통을 사려고 돈을 모았던 기억이 떠올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혹시나 주인아저씨가, 그래도 내 얼굴은 알아보지 않을까, 그때처럼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반갑게 인사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 아저씨 쪽을 흘끗 보았지만, 아저씨는 여전히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문득 그 문방구가 갑자기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가게의 크기는 그대로였고 물건이 잔뜩 쌓여있는 모습도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건 나였다. 내가 진짜 커버린 것이다. 마음속 한켠에서 나는 아직도 꼬맹이인데, 어느새 몸은 자라 버렸고 시간은 흘러버렸고 세상은 변해버렸다. 이렇게 갑자기 시간의 흐름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면 그 이질감에 나는 당황하곤 한다. 이런 변화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고 잡고 싶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는 이내 쓸쓸해지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던 형광펜 두 개를 들고 계산을 한다. 돈을 건네면서 아저씨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그러나 아저씨는 말없이 거스름돈을 건네주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현실 세계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문득 떠올랐던 추억의 공간은 빛이 바래갔다.


문구점을 나서는데 가슴 한켠이 먹먹하다. 돌이킬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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