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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가기 Jun 22. 2022

바보처럼 살아라


오늘 오전에 기타 소리가 어디선가 흘러나와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음악을 들었다.

잠자코 듣고 있자니, 시작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나는 오랫동안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시작하지는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언젠가 기타를 배울 거야’라고만 말하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지만 계획의 99%는 그저 지나가버리고 만다. 입 밖으로 나오고 행동으로 옮겨야 실제가 되는 것을, 현실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아마 귀찮음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지 못한 나를 탓해본다. 그러나 나는 실은 알고 있다, 귀찮음 속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는 것을.


어느샌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떤 일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가치를 따져보는 습관이 들었다.

만약 기타를 치면 비용은 얼마나 들까, 과연 기타를 치면 즐거울까, 꾸준히   있을까, 막상 시작하면 질려서 그만두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악기를 사는데 쓰는 돈이 아깝지 않나, 배운다면 어디서 배워야 하나, 배울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아닌가, 다른  것도 많은데 괜히 사치 부리는 것은 아닐까.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명분 아래,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를 예상하고 몸을 웅크려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걱정거리를 늘어놓다 보면 어느샌가 머리가 아파오고, 행동으로 옮길 의지는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기타를 배우지 않는 시간에 뭔가를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항상  핑계  핑계를 대면서 숨어 다니고 피해 다녔을 , 하염없이 시간은 지나가버리고 변화도 없이 정체되어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많은 시간 동안 가능성이 무수히 많았는데도 숨어 다녔던 것이다. 만약 그때, 눈앞의 것들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기를 그만두고, 실패할  같아 보여도   감고  악물고 바보처럼 뛰어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당연히 기타를 잡고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둘 수도 있고, 기타를 사는데  돈이 아까워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뭐 그러면 어때?

돈과 시간과 노력의 기회비용은 사실 그렇게 크지도 않았다.

지금쯤 기타를 재밌게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소중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다 보면 느끼는 것이, 똑똑하게 계산기를 한참 두드리는 사람보다 바보처럼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소중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계산해봤자 소용이 없더라.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평생 간직할만한 기억들은 우연히 뜻밖에 맞닥뜨리게 되는 법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기타 소리는 멎어있었다.

나는 오늘 퇴근하고 악기점에 들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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