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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쉬어가기 Sep 06. 2021

안개

무지(無知)에의 희열

아침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있었다.

쌀쌀한 아침 기온과 함께 나를 둘러싼 짙은 안개는, 익숙한 주변의 풍경을 신비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분이 좋았다.

차라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뜨거운 햇볕 아래 명확하게 보인다면, 주변 풍경에 대해 내가 상상할  있는 여지는 없어져버린다.

익숙한 풍경은 새로운 의미가 없다.  의식 속에 떠오르지 않고, 인지되지 않고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짙은 안개가 펼쳐져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상상을 펼치게 된다.

마치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듯이, 익숙했던 주변 환경이 새로운 매혹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 재미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안갯속에 파묻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평소에 그렇게 모든 것을 알아내고자 열망하고 집착하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무지(無知)에의 희열은 대체 무엇일까.


뒤돌아보았을  내가 걸어온 길이 안갯속에 잠겨버리는  모습이  묘하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지나온 날들에 대한 후회를,  반추를 멈추게 되고,

나를 둘러싼  시간  공간에 대해 문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라도  , 주변을 새롭게 바라본다.

단순히 물방울들이 떠있을 뿐인 현상이,  마음에게는  단순한 물리적 설명 이상의 무언가를 불러일으킨다.


미지에 대한 흥미로움과 흐릿한 풍경이 자아내는 신비로움 속에서, 나는 새로운 곳에 도착한 하나의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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