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하는 10분의 시간.

- 아들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by 점빵 뿅원장

사진은 제주도의 '책방소리소문'에 서 있던 패널을 찍은 것입니다. 작은 독립서점의 따뜻함과 굳셈도 좋았지만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이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같은 책이 두 권이 되든, 세 권이 되든 오로지 아들을 위해 예쁜 표지의 '어린 왕자'를 샀습니다. 아들이 읽기의 즐거움을 알면 좋겠습니다.



아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로 된 책을 잘 안 읽으려 한다. 그나마 읽는 것은 2주 간격으로 오는 어린이 과학동아와 학습만화 정도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만화만 보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 실린 기사도 읽고 있었는지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느낄 만큼 얘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아이들 운운하면서 유튜브와 각종 쇼츠의 폐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된 것은 결국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방치한 우리의 잘못이었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잔소리처럼 말하고 서점에 갈 때마다 읽기에 좋은 책을 사주기도 하지만 아이 마음은 우리와 다른 것 같았다. 골라준 책을 간신히 몇 페이지 보다가 한쪽에 던져두거나, 슬그머니 어린이 과학동아나 학습만화를 펼치곤 했다. 이러다가는 아이가 평생 책을 읽지 않게 되거나 읽기 능력이 떨어져서 중고등학교 때 고생을 할까 싶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안 읽던 아이에게 '너 그러다가 바보 돼!'라고 말하면서 읽으라고 한들 아이가 읽겠는가.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바뀌는 영상에 재미를 느끼던 아이가 읽는 재미를 모르는데 한, 두 시간씩 읽기가 가능하겠는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고,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무언가 읽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하루 10분이라도 내가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대신 그 시간만큼은 나도 핸드폰이고 티브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첫날, 밤 10시 40분이 되어서 아이와 책을 한 권씩 들고 아이 침대에 같이 누웠다. 10분 동안 타이머를 맞추고 '우리 이 시간만큼은 책을 읽자. 아빠도 이 시간 동안은 핸드폰을 보거나, 일어나거나, 대화를 하거나 장난하지 않을게. 그러고 나서는 너 편한 대로 해'라고 말하고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집중력이 좋은 아들은 이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약속한 10분이 지나자마자 타이머를 끄고 일어섰다. '내일도 이 시간에 또 책 읽자, 아들.'


다음 날도 아이는 10분 동안 아무 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다음 날이 되니 아들이 먼저 '오늘은 20분 읽어볼까?'라고 말한다. (이런 기특한 녀석!!!) 타이머를 맞추고 20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들은 책을 읽었다. 그 다음날 3박 4일간의 여행을 갈 때에도 읽던 책을 챙겨갔고 여행지에서도 하루에 10분 또는 20분의 독서 시간을 가졌다. 한 권의 책이 끝나감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지 '아빠, 생각보다 20분이 너무 빨리 지나가'라며 나에게 으스댔다. (이런 귀여운 녀석!!!) 여행에서 집에 돌아와서도 함께 책을 읽었고, 20분이 지나서 '아빠는 조금 더 읽을 테니까 너는 쉬던지 옆에서 더 읽던지 편한 대로 해'라고 말하니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옆에서 함께 책을 읽었다. 마침내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한 권의 책을 완독 했다.

'와, 대단한데! 다음에는 제주도 책방에서 한정판으로 팔던, 오직 너만을 위해 산 '어린 왕자'를 읽어볼까?'라는 말에 아들은 자신 있게 '응!'을 말한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타이머 하나 켜놓고 옆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즐거운 독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었던 나와 아내의 모습에 아이도 익숙해져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읽는 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스스로 책을 펼 수 있을 때까지는 저녁마다 함께 해봐야겠다. 아이가 글을 읽고, 지식이 쌓이고, 더 나아가서는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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