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람 덕에 버틴다.

팍팍한 해의 끝에서 건네받은 온기

by 점빵 뿅원장

연말이 되니 선물을 주는 환자분들이 있다. 어제도 환자분 두 분께서 직원수대로 빵과 호두과자 봉투를 챙겨주셨다. 저녁 때는 치과로 전화를 해서 거기 직원이 몇 명이냐고 묻는 분이 계셨다. 연말이 되면 의료 기관에서 해야 하는 필수 교육을 핑계 삼아 보험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하는 스팸 전화라고 생각했는데 누군지 물어보니 얼마 전 임플란트와 골이식 수술을 했던 환자분께서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며 전화하신 것이었다. 몇 명인지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환자분의 목소리가 점점 서운하다는 쪽으로 바뀌는 것 같아서 별 수 없이 인원을 말씀드렸다. 결국 오늘, 사람수대로 선물을 들고 오셨다.


이런 선물과 인사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참 어렵다. 적절한 비용을 받고 치료를 진행한 것이고, 치료가 계획대로 잘 끝나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당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강연에서 연자 선생님이 "개원의의 치료 성공률은 100%여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나 역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너무 고지식하게 그 얘기를 받아들여서 스스로를 달달 볶아서 힘들지만, 그래도 그 얘기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뭔가를 챙겨주시는 분들께 눈물 나게 고맙지만, 내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마음만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들 덕에 우리 치과에는 치료 비용 할인이 거의 없고 가급적이면 정해진 비용을 다 받으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어떤 분들은 할인을 해드리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선물이나 간식을 사 오시기 때문이다. 치료 비용 중에 5만 원 정도를 할인해 드렸는데, 다음 내원 때 10만 원도 넘을 것 같은 커피와 케이크를 바리바리 싸 오시거나, 어마무시한 양을 배달로 보내주셔서 위층에 있는 친한 원장님네 병원까지 나누어 드리는 경우도 있었고, 한 여름에는 너무 큰 수박을 보내셔서 직원들이 수박을 썰고 또 썰어 상가 전체가 나누어 먹은 적도 있었다(그때 직원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언젠가는 환자분이 직접 농사지은 방울토마토를 보내 주셨는데 직원들과 나누어 가져갔는데도 너무 많아서 한동안 집에서 과일로 방울토마토만 먹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자꾸 생기다 보니 차라리 할인을 하지 말고, 환자분도 괜한 돈을 쓰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에 비용 할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비용 할인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왜 더 많이 할인해주지 않냐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사실 요즘 너무나 힘들다. 경기가 어려워지니 환자분들이 지갑을 닫은 것도 있고, 주변에 치과가 너무 많아진 것도 있다.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바로 전에 쓴 글처럼) 가격을 앞세운 덤핑치과를 찾아다니다가 너무 싼 가격에 본인도 이상했는지 우리 치과에 찾아와서 검사를 받고 치료는 여기서 받고 가격은 그 치과 가격으로 내고 싶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치료계획을 세웠는데 유튜브나 SNS에서 본 것과 다르다며 날 이상한 치과의사 취급하거나, 엑스레이를 찍지 않고 그냥 입안만 보면 모르냐는 말로 분노를 자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치료해 줘서 고맙다며 뭔가 챙겨서 보내주시는 마음에 그래도 이 직업을 택한 내가 그리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를 받는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유난히 삭막하고 팍팍하게 느껴지는 올해이다. 그 덕인지 크리스마스 기분도 안 난다. 하지만 결국 사람 속에서 사는 우리이기에 마음이라도 풍요로워지면 좋겠다. 찾아주시는 분들, 마주치는 분들,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든 분들께 웃으며 인사를 건네봐야겠다.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