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연결
나는 매일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한다.
그리고 퇴근길에도 다시 버스를 탄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버스에 올라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고르며 잠시 피로를 잊고 싶었다.
버스가 익숙한 정류장들을 지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한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췄다. 두 사람이 타는 것 같았다.
시간상 곧 출발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앞에 한 승객이 서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아마 버스 카드를 꺼내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동작이 아주 느렸다.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문득, 영화 《주토피아》에 나오는 나무늘보 캐릭터가 떠올랐다.
그 느릿한 손동작, 아주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꺼내고, 카드를 단말기에 가져다 대는 일련의 동작들.
버스 안은 조용했고, 아무런 안내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은 그 승객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레 그를 주시하게 되었다.
'어디 편찮으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그는 마침내 카드를 찍고 천천히 버스 안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도, 우리도, 뭔가 불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승객은 다른 빈자리를 지나쳐, 하필 내 앞자리에 앉았다.
걸어오는 내내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고 있었는데, 앉자마자 버스 기사와 한바탕할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다행히 버스기사님은 조용히 아무말없이 그 승객을 예의주시할 뿐이었다.
“내가 54살인데… 카드 꺼내려고 하는데… ○○…”
(나이는 왜 말할까? 술도 마시지 않은 듯 했는데...중얼중얼 무슨 말을 하는데 사실 욕만 크게 들릴 뿐이었다. )
욕은 계속됐다.
몸은 반쯤 돌아와 있었고, 나는 그의 시선과 마주칠까 몸을 최대한 뒤로 물렸다.
자리라도 옮길까, 고민이 들었지만 괜히 내가 움직였다가 그가 돌발 행동을 할까봐 겁이 났다.
결국 나는 가만히, 최대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여차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그의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버스 안은 그 소리만 가득했고, 다른 승객들도 그 존재를 의식하는 듯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기이한 긴장감이 버스 안을 감쌌다.
몇 정거장이 지나고, 그는 하차 벨도 누르지 않은 채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문 앞에 다가가 문을 탕탕 두드리며
“문 열어라!”
하고 고함을 질렀다.
뒤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 승객이 버스 기사님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문요!”
아마도, 그를 얼른 내리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가 내렸다.
내리면서도 여전히 욕설은 멈추지 않았지만, 다행히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았다.
그가 버스를 떠나자마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했다.
“아유, 속 시원해라.”
말끝엔 깊은 한숨이 묻어 있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그 말을 내뺕는 순간, 마치 무거운 공기가 조금은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내내 숨죽이며 버티고 있었던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쉰 듯했다.
돌이켜보면, 그 날의 버스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노선이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진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익숙한 버스, 익숙한 시간, 익숙한 길이었지만, 갑작스레 파고든 낯선 존재는 우리 모두를 조용히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승객을 향한 두려움과 경계, 그리고 동시에 묘한 연민.
그 안에 뒤섞인 감정들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우리는 말없이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 순간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지금 이 순간을 무사히 지나치기만을 바라는 마음.
그건 어쩌면 아주 작고 조용한 연대였는지도 모른다.
버스 문이 닫히고, 그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버스 안 공기처럼 남아 있었다.
불편하고, 묘하게 씁쓸하고,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런 감정들.
그리고 그 감정은 내가 이 글을 이렇게 붙잡게 만든다.
다시 버스를 탄다면,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면서도, 아주 작은 사건 하나로도
누군가의 하루를 깊이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