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속, 작아지는 우리

by 작은 발자국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마치 처음부터 함께했던 것처럼 당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손에 스마트폰을 들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기 하나가 바뀐 정도가 아니다.

은행 업무, 쇼핑, 배달, 영화 예매, 키오스크 주문, 병원 예약, 정부 민원 처리, 심지어 복권 구매까지—

삶의 수많은 접점들이 오프라인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처음엔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말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디지털 세상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기능은 끝도 없이 쏟아지고, 앱은 자꾸만 업데이트된다.

나름 디지털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새로 등장하는 기능들 앞에서 “모르겠다”며 손을 놓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익숙한 것만 반복하며, 어느새 기술의 중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런데, 스마트폰을 늦게 접한 부모님 세대는 얼마나 더 낯설고 어렵고, 때로는 두려울까?

예전에 친정 부모님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을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걸려왔다.


"TV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화면이 까맣게 나와."

"리모컨이 말을 안 들어. 전자제품 매장에 갔더니 사용중인 통신사에 전화해서 구매하라는데, 어디에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보험 대리점에 보험금 신청하러 갔더니 없어졌더라. 전화로 하라는데, 뭘 눌러야 되노?"

"냉장고에 얼음이 안 얼어. 서비스센터 전화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노?"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직접 가서 해결해드리기엔 일상이 바빠 쉽지 않았다.

처음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가르쳐드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아무리 천천히 알려드려도 엄마는 고개를 저으셨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머리에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 ‘그림 설명서’였다.

문자를 보낼 때는 어떤 버튼을 어떤 순서로 눌러야 하는지,

사진을 찍고,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법, 은행 앱으로 이체하는 법, 심지어 전화를 거는 법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서 순서대로 정리해드렸다.


엄마는 그걸 수없이 반복해서 보며 연습하셨고,

그날 하루 종일 내 카톡은 울려댔다.


“카톡~ 카톡~ 카톡~ ”


엄마의 연습 상대는 항상 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혹시 아빠 아프면 내가 돌볼 수 있을까 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쳐볼까 생각 중인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엄마는 진심이셨다.


문제는 시험이 ‘컴퓨터 시험’이라는 점이었다.

종이 시험은 거의 없고, 있어도 1년에 한두 번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짧은 ‘디지털 특훈’이 시작됐다.


마우스를 쥐는 법, 클릭하는 법, 화면을 따라 눈으로 이동하며 정답을 고르는 법—

딱 그것만 이틀간 몇 시간씩 연습하셨다.

처음엔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조차 서툴렀지만, 결국 엄마는 컴퓨터 시험을 무사히 치르셨고, 합격하셨다.


시험 결과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날 엄마가 기쁨을 주체 못 하고 환호성을 지르던 모습이다.

얼마나 가슴 뭉클했는지 모른다.




요즘은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기술은 분명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 빠르고, 차갑고, 때로는 잔인하다.


익숙하지 않은 기계 앞에서 작아지고, 자식에게 묻는 것도 미안해지고,

결국은 세상과의 연결이 점점 느슨해지는 기분—

소외라는 말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 아닐까.


‘디지털 격차’라는 말은 단지 기술을 잘 아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이엔 자존심, 무력감, 세대 간의 거리,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 숨어 있다.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쥐고 있는 기계 하나가, 누군가에겐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창일 수 있으니까.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서게 될 우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이 빠른 세상에서 더디게 걷는 이들을 향한 이해와 배려가,

결국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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