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지만 따뜻한 초대

- 나를 굴 밖으로 끄집어내는 그녀들

by 작은 발자국

“내일 아침 일찍 산행가자~”


“헉, 갈 자신이 없다.”


“6시 30분에 만나요. 제가 언니 데리고 갈게요.”

“언니, 6시 15분까지 아파트 입구에 그냥 나오세요.”


“못 올라갈 것 같은데...”


“다 올라갈 필요 있나요? 등산짝대기 빌려드릴게요.”


“나도 있어.”


“그럼 내일 데리러 갈게요.”


“강제네~ ^^”


“알았어.”


운동이라곤 전혀 하지 않는 나는 산행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연례행사다.

갑작스러운 번개 산행 제안에 얼떨결에 못 가겠다고 했지만, 아는 동생은 기어이 나를 데려가겠다는 기세였다.

강제지만, 기분 좋게 또 한 번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나를 밖으로 이끈 사람들


고향에 내려와 자존감이 바닥을 친 뒤, 기존 인연들은 거의 끊어버렸다.

정말 내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연락을 끊었다.

아마 그들은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혹은 각자 나름대로 추측했겠지.


그렇게 시작된 내 인간관계의 폭은 좁디좁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만난 친구와 동생들이 자꾸만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마지못해 나간 식사 자리, 커피 한 잔이 쌓여 친분이 되고, 모임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나는 늘 먼저 무엇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없다.

누군가 이렇게 이끌어주지 않으면, 조용히 홀로 지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지인들과 만나 즐겁게 수다 떨고 기분 전환도 되지만, 몇 년 동안은 자신 있게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집이 편하며,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산길에서 느낀 새벽의 숨결

강제로 따뜻한 산행 초대를 받은 나는, 동네 뒷산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코스를 향해 올라간다.

정자가 보이면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첫 번째 정자를 지나친다.


“다녀올래? 여기서 기다릴까?”


“아직은 안돼~”


“그럼 다음 정자에서 쉬지 뭐.”


두 번째 정자가 보인다.


“두 번째네~”


“아직 숨이 차지 않은 걸 보니 더 올라갈 수 있겠네. 얼른 가자.”

마지못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군데군데 의자가 있었지만 쉬지 않고 올라갔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500계단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사실 올라갈 생각이지만 다시 한 번 말해본다.


“그만 내려갈까?”


하지만 정상에 도착한 이들이 우리 일행을 보면서

"어서 올라가이소~" 라며 재촉한다.

숨은 차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올라가는 그 길은 결코 힘들지 않았다.


정상에 올랐을 때 펼쳐진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안개가 짙게 낀 산길은 해가 떠오르며 사라지고, 눈부신 햇살이 우리를 비춘다.

태양 아래 보이는 구름 같은 안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른 새벽, 산에서 맞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는 살아있음을, 희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다시금 느낀다.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지인들 덕분이다.

그녀들은 나를 세상을 조금 더 둥글게 바라보게 하고, 밝은 길로 인도해 주는 귀인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진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나를 알아주는 한두 명만 있어도, 삶은 충분히 풍성해질 수 있다.

강제지만, 그녀들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나는 다시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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