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하나에 담긴 마음의 변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시간이 있었다.
결혼 후 타향에서 시작한 삶은 부모와 지인 하나 없이 외로웠지만, 그래도 행복할 줄 알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곳에서 뿌리내리며 잘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지금 상황이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는 게 어때?”
나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 내려가자” 하고 답해버렸다.
고향에서의 삶은 더욱 쉽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모든 잘못을 며느리에게서 찾는 듯했다.
차가운 말투, 냉정한 태도,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퍼부어지는 가시 돋친 말들.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변명을 한다 해도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단 하나를 지키려 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
그 마음만큼은 다치지 않도록 방어선을 세웠다.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속으로는 애써 버텼다.
남편은 지쳐 있었다.
오랜 타지 생활과 이어진 고단함이 몸으로 드러났다.
수두와 대상포진이 겹쳐, 온몸으로 병을 앓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만 돌보았다.
반면 시부모님은 자신들의 아픈 아들을 정성껏 보살피셨다.
결국 남편은 빠르게 회복했다. 부모의 손길이 약이 되었던 것이다.
몇 달을 지낸 후에는 남편은 살까지 오른 모습으로 건강해졌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여전히 돌보아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 상처를 묻지 않았고, 위로해주지 않았다.
친정 부모님은 사위와 시댁을 원망하며 내게 쏟아냈고, 나는 그 말들까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남편에 대한 애정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원망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커지는 건 상처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달리해 보기로 했다.
남편을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으로 받아들이자고.
휴대폰 속 남편의 이름을 ‘내편 ○○○’으로 바꿔 저장했다.
'온전히 내 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때부터였다.
전화가 올 때마다 보이는 이름, ‘내편 ○○○’.
단어 하나가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정말 내 편처럼 느껴졌다.
말의 힘이 생각을 바꾸고, 생각이 삶을 바꾸었다.
비 온 뒤 땅이 단단해지듯, 남편과의 관계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이제는 하루 중 가장 긴 대화가 남편과의 통화다.
짧은 틈에도 내 편은 전화를 걸어와 하루의 일을 종알종알 나눈다.
남편이 아니라, 이제는 진짜 ‘내 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