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ADHD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
“영화 보러 갔는데, ○○는 가만히 앉아 팔짱만 끼고 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계속 들썩거렸어요. 수업할 때도 가만히 있으면 이상해요.”
한 학생이 문제를 풀다 말고 갑자기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이 아이는 수업 시간 내내 끊임없이 움직인다.
갑자기 잡담을 늘어놓거나,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기도 하고, 친구의 한마디에 무조건 반응한다.
한마디로 산만하다.
매번 지적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순간뿐이다.
결국 나는 또다시 “○○야, 이제 그만! 집중해야지”라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자신을 문제라고 느끼고 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그래도 네 문제를 스스로 알고 있다니 대견하네. 그렇다면 조금만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자기 문제를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바꾸는 ‘짧고 강한 자극’
“혹시 쇼츠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닐까?”
내가 묻자 아이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10~20초짜리 영상만 계속 보다 보면, 이제 30초도 길게 느껴지지 않니?”
“네, 맞아요!”
요즘 아이들은 뇌를 ‘빨리빨리’ 자극하는 콘텐츠에 익숙해 있다.
도파민을 터뜨리는 게임, 자극적인 짧은 영상들.
그러니 긴 시간 차분히 앉아 수업에 집중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업 시간에 문제가 조금만 어려워도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생각해 보자”라고 지도하면, 잠깐은 고민하다가 금세 또 포기한다.
결국 내가 빨리 풀이 방법이나 답을 알려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잠깐의 모름에 힘들어한다.
오랜 기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문제를 느낀다.
아이들이 글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게 해도 글자를 그냥 흘려 읽을 뿐, 의미 단위로 끊어 읽지를 못한다.
읽고 나서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휘 부족은 더 절실하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조차 낯설어한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어휘를 간단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식’을 중국음식이라고 하고, ‘우천 시’를 도시 이름이라 하고,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난 설마 했지만,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기본 어휘력이 부족하니 교과서의 긴 문장이나 문제집의 서술형 문제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개념어를 풀어 설명하고 넘어간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무심히 쓰던 외래어나 게임 용어도 뜻을 정확히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습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긴 글을 버거워하고, 낯선 어휘 앞에서 멈칫한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차분히 앉아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고민을 시작한 아이를 보며, 나는 작은 희망을 본다.
아이들은 때로 멈추어 서서,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할 때 비로소 성장한다.
지금은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앞서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 변화의 씨앗이 숨어 있다.
나는 오늘도 수업 시간마다 그 씨앗에 작은 물을 주듯, 차분히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는 연습을 이어간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시 긴 호흡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