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어린 시절을 비춰주는 두 아이의 거울
딸과 아들은 세 살 차이다.
고3과 중3, 예민하기 그지없는 시기.
그런데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남매이다. 두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하나.
어릴 적에도, 지금도 우리는 친하지 않다.
부모님은 늘 농사일에 바쁘셔서, 집에는 우리 둘만 남겨진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 빈집의 고요를 메운 것은 웃음소리가 아니라, 말 없는 거리감이었다.
사춘기 무렵, 우리는 서로를 견딜 수 없어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쳤다.
마치 서로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듯.
동생은 내게 말했다.
“밖에서 만나도 절대 아는 척하지 마.”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한 번은 감정이 폭발해 몸싸움까지 번졌다.
내가 던진 빗은 동생의 귀를 스치며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다.
나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내 불안했던 사춘기의 그림자를 본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분노로 차 있었고, 불만이었다.
해소할 수 없는 뭔가를 가슴속에 품고, 불안한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을 때였다.
그리고 그 화살은 동생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곁에 감정 해소대상은 동생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누나라는 이름으로 언제나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동생이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주먹을 날렸을 때, 나는 알았다.
사춘기 소년의 힘은 날카로운 비수같이 아팠다.
그 순간 튀어나온 말,
“이제 그만하자.”
단호한 척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남매 관계는 점점 더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생활에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나누는 대화는 안부와 생일 축하 정도.
우리는 그렇게 남매라는 이름만 간신히 붙들고 있다.
그런데 내 아이들은 다르다.
사춘기의 남매치고는 놀라울 만큼 순조롭다.
가끔 말다툼은 하지만, 금세 돌아서고 만다.
서로를 향해 툭 내뱉는 말,
“어이, 띨띨이.”
“못생긴 놈.”
그러나 그 속에는 가시가 없다.
아들은 고민이 생기면 나보다 누나를 먼저 찾는다.
시험 준비법을 묻고, 또래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울지는 않아도, 서로를 향해 작은 다리를 놓는 듯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놀란다.
싸움 없이도 단단해질 수 있는 관계,
멀리서도 든든한 등불이 되어주는 남매.
내 사춘기와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가끔 남편과 말한다.
“둘이 싸우지 않아서 너무 좋아.”
많은 남매가 치고받으며 자라는데,
너희는 그러지 않아 엄마 아빠는 행복하다고.
나는 아이들을 보며 배운다.
남매의 사랑은 꼭 드라마처럼 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너희가 싸우지 않고 자라준 것,
서로의 곁에 자연스레 머물러 준 것.
그게 엄마에게는 기적처럼 고맙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내 불안했던 사춘기를 너희가 대신 치유해주고 있음을.
상처로 얼룩진 나의 사춘기 위에, 너희가 고요한 빛을 덮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