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한 중년 승객이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들려오는 음악 소리.
이어폰도, 볼륨 조절도 없다. 혼자만의 음악 감상에 빠진 듯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공공장소에서는 큰 소리를 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일상에서 자주 마주친다.
마치 공공장소가 개인의 거실인 듯 행동하는 사람들을.
* 병원 대기실에서 유튜브를 크게 켜놓는 사람
* 도서관에서 거리낌 없이 통화하는 사람
*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피커폰으로 대화하는 사람
* 드라마나 영상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진다.
특히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나이 지긋한 어른들일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는 뛰면 안 돼, 큰 소리 내면 안 돼”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그 예의를 지켜야 할 대상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을 배제한 태도처럼 느껴진다.
내가 자주 지나는 동네 버스정류장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름 무더위 피난처처럼 쓰이는 그곳에는 더위에 지친 동네 어른들이 모여 쉬곤 한다.
어느 날, 늘 보이던 한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었다.
정류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그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다리만 거두면 몇 사람이 더 앉을 수 있을 텐데. 물론 다리가 불편해서 그 자세가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그분은 옆 사람과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릴 적에는 선생님이나 어른 앞에서 깍듯이 인사하고, 꼭 두 손으로 물건을 받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예의가 없다며 한탄하고 계셨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걸렸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
스스로는 보지 못한, 그러나 남에게는 엄격히 요구하는 그 태도 말이다.
공공의 예의는 누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더운 여름 한 줄기 그늘처럼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반대로 작은 무심함이 누군가의 하루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크게 웃었거나, 통화에 몰입해 주변을 잊은 적은 없었을까.
“나는 괜찮다”라는 생각이 쌓이면, 결국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혹시,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