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횡단보도가 없는 2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달려오는 1톤 트럭에 치였다.
놀란 나는 도로 한복판에 그대로 멈춰 섰고, 그 순간 내 다리는 트럭 타이어에 깔렸다.
어른들이 달려오고, 트럭 기사는 피가 철철 흐르는 나를 태워 동네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곧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다리는 석고 붕대에 싸인 채 석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어린아이에게 석 달은 얼마나 길었을까. 병원에서의 기억은 희미하다.
다만 의사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은 아직도 선명하다.
“크면 미스코리아 될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운 말이지만, 어린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다리에 큰 흉터가 남을 아이에게 건네는 위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흉터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라면서 더 커졌다.
흉터와 나의 성장
어린 시절 사진 속 나는 늘 무릎까지 오는 양말이나 긴바지를 입고 있다.
내 다리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내 다리의 흉터를 보고 묻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화상 입었니?”라는 질문은 언제나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춘기 시절, 콤플렉스는 더 커졌다.
결국 엄마를 졸라 성형외과까지 갔지만, 당시 기술은 미흡했고 비용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의사가 했던 말은 지금도 기억난다.
“커서 결혼하면 남편한테 수술해 달라고 해.”
나는 그 말도 철석같이 믿고, ‘언젠가는 수술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성장했다.
흉터를 받아들이다
결혼 후에도 흉터는 여전히 내 삶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남편에게 수술을 부탁해 본 적도 있다.
그는 하라고 했지만, 나는 결국 하지 않았다.
경제적 여건도, 나이 든 지금의 현실도 그 선택을 가볍게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남의 시선에 끌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삶은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내가 걱정하는 것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나 자신이었다.
나만의 속도로
이제 나는 흉터를 감춘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흉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흉터는 내 과거의 일부이고, 내가 걸어온 시간의 증거다.
남들이 만든 기준에 맞추기보다,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가려 한다.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는 나다.
흉터는 여전히 내 몸에 남아 있지만, 더 이상 내 마음을 옥죄는 족쇄가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일깨워주는 표식이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내가 가진 흉터는 단지 상처가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또 하나의 얼굴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