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함 속에 담긴 마음

by 작은 발자국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은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무뚝뚝한 아빠, 시집살이에 늘 조심하며 지내던 엄마.

어릴 때 아빠와 대화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빠는 늘 무서웠다.

웃는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았고, 늘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말이 없거나 무뚝뚝, 무신경 그 자체의 말투뿐. 마치 항상 화나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절제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특히 어른들 앞에서는 어떤 감정도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은연중에 익혔다.

그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다.



결혼 후 힘든 시기를 지나며, 속마음을 꽁꽁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무덤덤한 표정과 건조한 감정 표현이 내게 익숙해져 버렸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나는 활짝 웃으며 격하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그 사람보다 더 걱정하며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


실제로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그저 “약 먹어.” 혹은 심하면 “병원 갈까?” 정도를 말할 뿐이다.

옆에서 끊임없이 괜찮은지 묻거나 세세하게 살피는 일은 잘하지 않는다.




딸은 지금 고3 수험생이다.

주변에서는 다들 힘들겠다고 하지만, 사실 나는 힘들지 않다.

세세하게 챙기며 마음까지 아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춘기가 한창인 아들과의 감정싸움이 힘들 뿐.

딸이 시험을 망쳤다며 울고 있어도 나는 그저 “잘했어, 그 정도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힘든 점을 털어놓으면 들어주기만 하고, 약간의 의견만 덧붙일 뿐이다.

아이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곁에서 그저 있어주고 “넌 잘하고 있어”라는 몇 마디를 건네면 딸은 금세 괜찮아지곤 했다.



내 지인 중에는 사소한 일에도 크게 공감하고, 상대방의 기쁜 일에는 함께 환호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괜히 더 위축된다.

내 반응이 초라해 보이고, 마치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막상 억지로 감정을 과장해 표현하면 불편하다.

그건 나다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나는 굳이 캐묻지 않는다.

내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누군가 꼬치꼬치 묻는다면 대답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만, 대화가 끝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다.




결국 나는 깨닫는다.

누군가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억지로 흉내 낼 필요도, 불편한 옷을 입은 듯 살아갈 필요도 없다.

조금 무덤덤해 보여도, 그건 내 방식이고 나의 진심이다.


무덤덤함,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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