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다가오자 아들의 몸집은 여름보다 더 커져 있었다.
점퍼가 작아, 하나 입을 게 없다며 투덜거린다.
막 사달라고 조르진 않지만, 옷장에 있는 옷부터 확인하라고 했더니 입이 금세 뾰로통해진다.
“있는 옷부터 찾아보고 필요하면 사자.”
내 말은 아들에게 들리지 않는 듯하다.
아들은 자기 몸에 맞고, 눈에 띄지 않는 옷만 입는다.
내가 마음에 들어 사온 옷들은 옷걸이에 걸려 먼지만 쌓인다.
옷장 속에 어떤 옷이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고, 늘 손에 익은 옷만 반복해서 입는다.
“내 돈으로 사지 뭐.”
툭 던지는 말에는 사춘기 특유의 자존심이 묻어 있다.
나는 “그래, 니 돈으로 사라”라고 받아치지만, 속으론 웃음이 나고 심술도 난다.
주말, 모처럼 외식에 나선 김에 아들 옷을 사기로 했다.
브랜드엔 관심 없다고 잘라 말하는 아들. 기사에서 보던 ‘브랜드에 집착하는 청소년’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편하면 된다는 주의. 그게 고맙다.
스포츠 매장에 들어서자 아들은 쭈뼛쭈뼛 어쩔 줄 몰라한다.
원하는 옷을 찾지도 않고, 그냥 얼어붙은 듯 서 있기만 한다.
아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집어 들며 “이거 어때? 입어봐”라고 하자 마지못해 입는다.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 이주일 정도밖에 못 입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방수 기능이 있고 초겨울까지 입을 수 있는 점퍼를 권했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거 사. 오래 입어.”
“고등학교 때까지 입으면 되겠다.”
“교복 위에 입어도 괜찮아.”
“난 이 옷이 더 나아 보여”
아빠도, 나도, 누나도, 점원까지 한 마디씩 거들자 아들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말들 속에 갇힌 듯했다.
그러다 결국 중얼거린다.
“다들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야 해? 부담스러워.
마치 내가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같아.”
그 말에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옷을 내려놓고 매장을 조용히 나왔다. 응대해준 점원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들은 미안한 듯 “엄마, 그냥 나와도 돼?”라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괜찮아,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는 거지”라고 대답한다.
다른 매장에 들어가 다시 얇은 바람막이 점퍼를 입어보는 아들.
이번엔 조금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런데도 결정을 쉽게 못 내린다.
“괜찮아? 마음에 들어?”
가족들의 시선, 점원의 권유, 낯선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사춘기 아들에게는 이 모든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겨우 “응, 이건 지금 입을 수 있겠다”라는 말로 마음을 내비친다.
우리가 원했던 건 조금 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었지만, 아들에게는 ‘지금 당장 편하게 입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이 툭 내뱉는다.
“엄마, 꼭 옷 고를 때 점원이 옆에 있어야 해?”
그 말속에는 남의 눈길이 너무 신경 쓰이는, 사춘기 아이의 불편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옷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옷을 고르는 순간에도 ‘보여지는 나’를 의식하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아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사긴 했지만, 이번 쇼핑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
앞으로 아들과의 옷 쇼핑은 아마 매장보다 인터넷이 더 많아질 것이다.
아들에게는 덜 불편하고,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타협일 것이다.
사춘기의 마음은 복잡하다.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는 건 부담스럽다.
보여지는 자신을 의식하면서도, 동시에 부모의 관심은 여전히 필요하다.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말을 던져놓고 무관심하면, 또 관심 없다고 서운해한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농담처럼 마음속 진심을 내뱉기도 한다.
나는 아들의 말과 표정에서 그 미묘한 감정을 읽으려 애쓴다.
옷 한 벌을 고르는 일에도 이렇게 많은 생각과 감정이 얽혀 있다니.
하지만 결국 이 과정은 아들이 ‘자신만의 선택’을 배워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아들의 사춘기는 그렇게 옷처럼 몸에 맞춰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쇼핑은 끝났지만, 아들의 사춘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나는 다만, 그 여정을 함께 걷는 동행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