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는 내가 장녀다.
언제나 의젓해야 하고, 어른들이나 동생을 챙겨야 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내로 태어난 내 친구 앞에서는 내가 늘 막내가 된다.
마음씀씀이나 행동, 말투 하나까지도 나보다 훨씬 언니 같다.
그 친구는 고향에 내려왔을 때 만났다.
우리 인연의 시작은 조금 특별했다.
부모님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안 작은 마트 주인아주머니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셨다.
어느 날 마트에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저 친구랑 나이 비슷해 보이네. 둘이 친구 해.”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그 말에 자연스럽게 서로 나이를 물어보게 되었고, 같은 나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아이들까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다.
그 공통점 덕분인지, 첫 만남부터 언니 같은 포근함을 주는 그 친구에게 금세 호감이 갔다.
그날 바로 친구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찾아간 그 집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친구는 소파에 앉아 있는 내 앞에 따끈한 차 한 잔을 내어주며 “편하게 있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마음이 터지고 말았다.
첫 만남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는 멋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친구는 당황하지 않았다.
묵묵히 내 옆에 앉아,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작은 손길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는 듯했다.
그 뒤로 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나는 늘 감정을 숨기려 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명절 즈음이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잠깐 나오라며 선물을 건네고, 바쁘다며 금세 떠났다.
어린이날에는 작은 선물을 보내며 “애들 이모 없잖아. 내가 이모 할게” 하고 웃었다.
언제나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해오고, 만나면 먼저 밥을 사고, 커피를 사준다.
가끔은 바람 쐬러 외곽으로 데려가 주기도 하거나, 산지에서 딸기며 사과를 사 와서는 한아름 안겨주기도 했다.
친구는 늘 자신의 힘듦은 뒤로 미뤄두고, 나에게 마음을 주었다.
난 미처 친구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했다.
나는 늘 받기만 하는 게 미안했지만, 친구는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내가 고맙다고 하면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라며 손사래를 치고, 내가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복 받았어” 하면 “내가 더 고맙지”라고 말하는 친구.
고향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는 낯설고 외로운 기분뿐이었는데, 친구를 만나고 난 뒤 고향은 다시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늘 나를 “이쁜 친구”라고 불러 주고, 오히려 내가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
그래서일까, 이 친구라면 평생지기가 되어도 행복할 것 같다.
살다 보면 마음 기댈 곳 하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럴 때 곁에서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웃어 주며 곁에서 든든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나도 그 친구에게 평생 곁에 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친구가 되고 싶다.
이 소중한 우정이 오래도록 빛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