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오전 시간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다.
수업을 나가기 전까지, 아이들이 남기고 간 아침상을 내 아침밥으로 대신하거나,
간단히 요기를 하며 천천히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아침 청소를 하고, 씻은 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잠시 고요함을 만끽한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친정에 일이 있어 들렀다 오는 길, 예상보다 시간이 남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오전의 아파트 주변 풍경은 뜻밖에 평온했다.
출근길의 차량, 스쿨버스, 아이들을 배웅하는 부모들로 분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10시가 넘은 단지는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갑자기 ‘웅—’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무 분사 차량이 지나가는 것이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연무가 옅어지길 기다리는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해 질 무렵이면 동네를 누비던 분사차를 따라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
나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그때는 그 연기마저 즐거움이었는데, 지금은 그 속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소한 연기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어린 날의 순수함이 새삼 그리워졌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놀이터에 모여 앉은 아이들이 보였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금세 딴짓을 하며 집중력이 흐트러지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다시 모으려 애쓰는 선생님을 보며 웃음이 났다.
우리 아이들 어릴 적 모습이 스쳐가며, “저런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놓고 나니 오히려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 있고, 가을 햇살 속에서 나비들이 가볍게 날아다닌다.
예전 같으면 스쳐 지나쳤을 풍경인데, 요즘은 자꾸 눈길이 간다.
꽃도, 나비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괜히 오래 바라보게 된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조차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 순간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전에는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 집순이다.
그런데 오늘 마주한 풍경들은 평범하면서도 내 일상에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아마도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동안 너무 잊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은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건강한 몸, 바른 마음, 가족과의 소소한 웃음이야말로 진짜 큰 행복이라는 것을.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늘 교차하며 지나가지만,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느냐에 따라 행복의 무게도 달라진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늘 곁에 있었지만,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행복은 거창한 사건이나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일상의 틈새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다.
아이의 웃음소리, 창문을 스치는 바람,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지탱해 준다.
예전에는 늘 ‘더 커다란 행복’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행복은 쫓아가서 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