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칭얼거리며 “엄마, 미워!”라고 소리쳤다.
옆의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묵묵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아무 말 없이 그 곁을 지나쳤다.
몇 걸음쯤 떨어졌을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즈음, 아들이 갑자기 따라 하듯 “엄마~ 미워”라고 말한다.
순간 우리 둘은 동시에 피식 웃고 말았다.
아이의 떼쓰는 모습은 엄마의 고단함을 드러내지만,
그 작은 목소리 속 “엄마 미워”라는 말은 우리에게 왠지 귀엽게 들렸다.
그래서일까. 아들의 장난스러운 흉내가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네가 어릴 땐 ‘엄마 미워’라고 말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
내 말에 아들은 바로 받아친다.
“내가 지금 얘기하잖아. 엄마~ 미워.”
마침 옆을 지나던 다른 아이는 엄마 등에 업혀 울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었는데 데려가니 속상한 모양이다.
그 아이를 보며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도 저렇게 울곤 했지.”
그러자 우리 둘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순간은 마치 감정의 거리가 좁혀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은 아들,
사춘기라는 큰 산을 오르내리며 수없이 대립했던 아들.
그와 “엄마 미워”를 두고 주고받은 몇 마디 대화가 이상하리만큼 즐겁게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늘 고단했다.
울고 싶던 날도 많았고, 아들과 맞서며 분노에 휩싸여 소리 지른 적도 셀 수 없었다.
빨리 자기 앞가림만 하기를 바라던 시간, 그 끝에는 또 다른 산, 사춘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올라온 그 산의 정상은 이제 서서히 지나가는 것 같다.
내려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사소한 대화가 마음을 환하게 한다.
아들이 어릴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엄마 미워.”
이제야 장난처럼 건네받으니 묘하게 귀엽고, 낯설지만 따뜻하다.
그 한마디가 우리 사이를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웃음 속으로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아들이 “엄마 좋아”라고 말해줄 날이 오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웃음을 오래 마음에 담아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