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보다 기다림이 필요한 시간
“아니다.”
짧은 한마디와 함께 아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 사이로 깊은 한숨이 스며 있었다.
나는 그 한숨 속에서 무언가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못했다.
‘지금은 말하기 싫은가 보다.’
‘내가 또 괜히 건드릴까 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도 입을 다물었다.
아들은 점점 말을 아꼈다.
대화 중 멈칫하더니 “됐어”, “괜찮아”, “그냥…”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내 마음에도 또 하나의 문을 세우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수없이 물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혹시 내가 너무 많이 말했나?’
‘아니면, 내가 아이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걸까?’
그때서야 알았다.
아들이 나에게 침묵으로 보내던 건 거리감이 아니라 신호였다는 걸.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지금은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신호였다.
나는 늘 ‘대화해야 관계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춘기의 대화는 말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가끔은 침묵이 그 자체로 아이의 언어였다.
이제는 아들의 한숨이 들릴 때,
그저 조용히 옆에 있어 주려 한다.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의 침묵은 나를 성장시켰다.
예전엔 말로 아이를 이해하려 했다면,
이제는 묵묵히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은
그렇게, 아주 느리게 찾아온다.
오늘도 아들의 한숨을 들으며,
나도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아들과의 침묵은 단절이 아니었다.
무관심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세상을 향해 알을 깨고 나가려 애쓰는
아들에게 건네는 나의 작은 힘이라는 것을.
그 침묵 뒤에는 언제나 마음을 전하려는 작은 신호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신호가
‘사과’라는 형태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