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인연이 전해온 온기

by 작은 발자국

딸이 아주 어렸을 때였다.

문화센터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언니가 있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유난히 맑고 선해서, 처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이었다.

우리 딸과 언니의 딸은 겨우 세 달 차이.

손을 꼭 잡고 다니며 친구처럼 지냈고, 그 모습만으로도 하루가 따뜻해지곤 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언니의 딸이 ‘언니’가 되어버렸지만, 그마저도 귀여운 추억이 되어 남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큰일이 닥쳤고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세상이 온통 까만색으로 보이던 시기,

애써 웃으려 하면 눈물이 먼저 흐르던 그때.

작별을 앞두고 나눈 언니의 몇 마디 말에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위로가 깊게 배어 있었다.


그렇게 떠나온 뒤, 나는 그 인연이 조용히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언니는 몇 년이 지나서도

멀리 떨어진 우리 가족을 굳이 찾아왔다.

지나는 길이라며, 일부러 발걸음을 돌려서.

그 밝고 환한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속에 가라앉아 있던 무거움이

파도처럼 사라져 버리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를 잊지 않았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 큰 위로가 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연락은 뜸해졌다.

그렇지만 카톡에 남아 있는 언니의 사진만 봐도

문득 미소가 나올 만큼, 그 사람은 내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몇 년에 한 번, 아주 가끔 연락을 주고받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따뜻함들.

그 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간혹 서로의 안부를 묻던 연락이 마지막이 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언니에게서 선물이 도착했다.

딸의 수능이 끝났으니 늦었지만 고생했다며 보낸 마음.

그리고 우리는 다시 통화를 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였다.

마치 시간이 멈추었다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듯,

어색함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었다.

몇 년 만의 통화였지만, 솔직하게 웃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람 사이의 온기가 때로는 이렇게 시간을 뛰어넘는다.


요즘 유난히 마음이 힘든 날들이 이어졌는데,

언니의 갑작스러운 연락은

깊은 어둠 사이로 스며든 작은 빛처럼 느껴졌다.

아, 이런 사람이 내 인생에 있었지.

이토록 따뜻한 인연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주 보지 않아도, 오래 연락하지 않아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존재.

수많은 인연 중, 유난히 시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나는 자주 연락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 년 만에 연락해도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반가운 인연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인생에서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다시 한번 느낀다.

오래된 인연이 전해주는 온기는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고,

어떤 말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는 것을.


오늘은 잠시,

내 마음 어딘가 조용히 자리한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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