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딸이다.
스스로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잘 있나? 요새 연락이 없어서... 잘 있나 싶어서…”
“응, 밥 먹고 설거지해.”
건조하게 툭 내뱉은 내 말.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급히 말을 돌렸다.
“추수하기로 한 거 언제 할 건데?”
“아직 땅이 질어서 안 된다. 멀었다.”
“이번 주 일요일이나, 다음 주 일요일에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와? 다음 주는 어데 놀러 가나?”
“아니, 어머님 생신이라 밥 먹기로 했어.”
“우리는 오후에 할 건데, 시간 많이 안 걸린다.”
“점심 먹고 나면 좀 애매해서…”
“너거 시간 안 되면 우리가 알아서 하지 뭐.”
“시간 안 맞으면 사람을 써도 되고.”
“그거 꼴랑 별일도 아닌데 누가 하노?”
“그래도 사람 쓰면 편하잖아...”
엄마와의 대화는 언제나 편하지 않다.
‘엄마~’ 하고 살갑게 부르며 다정하게 말 건네는 일이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정확히는, 나는 그런 표현을 잘 못 한다.
엄마에게서 가끔 ‘잘 지내냐’는 안부 전화가 올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너무 신경 안 썼나?’
죄책감이 먼저 밀려온다.
하지만, ‘이제 자주 연락드려야지’ 하는 결심도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그런 성격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먼저 연락하거나 만나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엄마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편과 딸에게는 자주 소통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편이다.
(사춘기 아들은 예외다. 요즘은 말을 건네는 것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엄마와 나는, 마음의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는 그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거란 걸 안다.
가끔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아마, 어린 시절 형성된 나의 자아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증조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의 무관심,
결혼 후엔 다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빠,
늘 비판적이던 시댁 식구들.
엄마는 줄곧 누군가에게 ‘받아본’ 적이 없이 살아오신 분이다.
나와 동생도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보다는
고된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 뒤를 따라 자라났다.
할머니 눈치 보느라,
엄마는 우리에게도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엄마에게서 정서적인 안정이나 의지할 수 있는 위로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사춘기 때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래서일까.
중요한 일을 엄마에게 의논하거나 도움을 청한 적이 거의 없다.
늘 ‘나 혼자’ 결정하고 감당했다.
부모님에게 기대기보다,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말 한마디, 부탁 한 번이 어렵다.
마음속 어딘가에
“엄마에게 의존하면 안 돼”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는 나에게 점점 감정적으로 의존하신다.
“우리 딸~”
예전엔 듣지 못했던 말들도 카톡에 적혀온다.
그럴수록 나는 뒷걸음질 치고 만다.
엄마의 외로움, 고단한 인생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릴 적 경험이 내 안의 감정을 막는다.
사랑받고 싶었던 나,
하지만 제대로 기억되는 사랑이 없던 시간들.
이제 그 엄마가 나에게 애정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 따뜻한 말들이 낯설고 불편하다.
엄마가 점점 더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느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아직 닫은 채 살아온 내가,
그 문을 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진짜 나쁜 딸일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정말 바랐던 건,
살가운 말 한마디, 무조건적인 지지,
‘엄마니까 다 괜찮아’ 해주는 그런 존재.
지금도 엄마를 보면 가슴이 저리다.
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엄마와 나 사이,
그 조심스러운 거리는 아직 그대로다.
차츰 다가가보려 한다. 엄마니까~
(이 글은 작년 추수즈음 쓴 글입니다. 전화를 받은 날, 혼자 알 수없는 답답한 마음이 파고 들어 남편에게 이 심정을 하소연하다 글로 썼어요. 그 글을 수정해서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