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는 말에 “응”이라고만 말하는 나

– 감정 표현이 서툰 나와 섬세한 남편의 이야기 –

by 작은 발자국

감정 표현에 서툰 나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이다. 마음속에 뭘 느끼든, 말로 꺼내는 일이 쉽지 않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고,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질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결혼한 사람은, 놀랍게도 감정 표현이 아주 능숙한 사람이다. 심지어 경상도 남자인데도 말이다.

섬세하게 다가오는 사람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은 나에게도 익숙한 성향이었다. 거칠게 말하고, 직설적인 대화에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서울. 동향이지만 그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말끝마다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이었다. 당시엔 서울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배려하는 말투가 배였겠거니 했지만, 함께 살아보니 알게 됐다.

그건 남편의 원래 성격이었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남자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해”라는 말을 한다. 그건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잘 자”나 “다녀와”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인사다.

반면 나는? “응” 한 마디로 답하는 게 전부다. 내가 봐도 너무 매력 없고 심드렁한 반응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한 번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너도 사랑한다고 말해봐” 같은 요구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늘 그래왔기에, 남편은 말하는 쪽, 나는 듣는 쪽으로 자리를 정해버렸다.


말보다 마음이 앞서던 내 반응


가끔 목소리에 힘이 없거나, 자다 일어난 목소리로 남편 전화를 받으면 꼭 남편은 되묻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 없어.”

사소한 일에도 내 기분을 살피는 그의 태도는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담스럽다. 너무 자주 묻고 캐묻는 듯한 말투가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걱정해 주는 마음을 거절하는 나의 이 까칠한 성격 때문에, 그 배려조차 때때로 밀어낸다.


과할 만큼 친절한 그 사람


남편은 무언가를 부탁할 때마다 “미안한데~”로 시작한다.


“미안한데, 물 한 잔만 줄래?”

“미안한데, 커피 좀 타줄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데, 어찌 안 들어줄 수 있겠는가.


혹시 내 기분을 상하게 할 말을 꺼낼 때면 꼭 이렇게 말한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들어봐~”


그 말을 들으면 나는 또 괜히 긴장한다. 큰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하지만 알고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편은 늘 그렇게, 과할 만큼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싸움 후에도 먼저 손 내미는 사람

가끔은 의견 충돌로 말다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둘 다 언성을 높이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싸해지고, 말 없는 시간이 이어진다.

이럴 때도 남편은 늘 먼저 말을 건다.


“아까는 미안했어. 기분 풀어.”


그럴 때 나는 “나도 미안했어”라고 말하는 대신, 그냥 “응~” 하고 넘긴다. 왜 그 말 한마디가 이리도 어려운 걸까. 나도 참 답답한 사람이다 싶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중


이렇게 지내온 시간이 어느덧 20여 년. 말로 다정하게 표현하는 게 익숙지 않은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처음엔 직접 말하지 못해 카톡으로 대신했다. 짧은 이모티콘 하나, “오늘도 수고했어” 한 줄로. 그런데 그렇게 한 줄씩 꺼내놓다 보니, 마음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도 말한다


남편의 부드러운 말투에 익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그 언어에 물들었다. 이제는 누군가 거칠게 말하는 걸 들으면 낯설다. 내 귀는 이미 다정한 언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나도 말한다.


“요즘 고생 많지?”

“안 힘들어?”

“응, 나도 사랑해.”

“미안해.”


수십 년간 엉켜 있던 내 감정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풀려가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끝으로


누군가는 쉽게 하는 말이 누군가에겐 참 어려운 말일 수 있다.

나는 지금,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나를 배려해 준 한 사람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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