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며, 마음을 비우다

– 비워낸 자리, 설레는 내일을 위한 여백 –

by 작은 발자국


거실 한편, 책장이 말을 걸다


거실 한편, 책들로 빼곡한 책장이 숨 막힐 듯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무 많지 않아?”

그 순간, 답답함이 몰려왔다.

단순히 공간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가 쌓아둔 건 책이 아니라, 마음속 여백을 빼앗아간 무언가였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물건을 정리한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놓아주는 일


이사 전에는 큰 평수의 집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넉넉하게 느껴지던 공간이 짐이 늘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점점 좁게 느껴졌다.

어느 날, 거실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깨달았다.


이 물건들, 정말 내가 필요로 하는 걸까? 아니면 단지 놓아주지 못한 시간들일까?

책장은 이미 책들로 가득했지만, 그 위와 사이사이에는 장난감, 사진, 잡다한 물건들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숨 막히는 책장은, 어쩌면 여유 없이 쌓이고 얽혀버린 내 삶의 축소판 같았다.


조금씩 틈을 만들어야 내 마음도 숨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속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리를 선택했다.


아이의 책, 추억과의 작별


읽지 않거나 필요 없어진 책들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 읽었던 전집은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해서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됐다.

그 후 잘 읽지 않는 책들, 앞으로도 펼치지 않을 책들을 선별해 하나씩 정리했다.

하지만 가장 고민됐던 건 아이들이 좋아했던 책이었다.

읽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을 들고 있으면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 팔아도 될까?”


책을 건네자, 첫째는 한참 동안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말했다.

“음... 이건 괜찮아. 근데 이건 안 돼! 내가 정말 좋아했던 책이야.”

그러며 책 표지를 한 번 더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그 책에는 단순한 글과 그림이 아니라, 아이의 추억과 성장의 한 장면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책 한 권, 마음 한 조각


책을 정리한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비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책을 한 권씩 꺼내 들며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장 이 책을 읽고 싶은가?’


대답이 “아니”라면 팔거나 버릴 대상으로 분류했다.

표지가 닳도록 읽었던 책이라도 손이 가지 않았다면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정리는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니까.


공간의 값어치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하며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여전히 “언젠가 읽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남겨둔 책이 많았다.


그러다 갑자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방 책장부터, 팬트리에 보관 중이던 책까지 매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팔 수 있는 책들을 모았다.


사실 구매가에 비하면 가격은 턱없이 낮았다.

알라딘 앱으로 책의 바코드를 찍어 매입가를 확인했을 때, 처음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900원이라니…”


하지만 책을 포장하며 다시 생각했다.

금액이 아니라, 내가 비우는 ‘공간’의 값어치를 떠올려야 한다고.


책장에서 책을 빼낼 때마다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이건 금액이 아니라, 삶의 여백을 되찾는 일이었다.


아직은, 다 비우지 못했지만


책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 판매자로 등록해 팔아본 적도 있지만,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쉽지 않았다.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공간을 비워내는 것이 훨씬 더 급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다.


마음이 설레지 않는 책이라면 보내는 것이 맞다.

그렇게 공간을 비우며 나도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비워낸 자리, 설레는 내일


책장에서 발견한 것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마치 비 온 뒤의 맑은 하늘처럼,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찬 여백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여백에, 나를 설레게 하는 내일의 가능성을 채우기로 했다.


비워낸 공간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은,

마치 새벽하늘의 상쾌한 공기처럼 나를 깨우고 있었다.


정리란 결국, 나를 위한 일

정리란 단순히 물건을 비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가볍게 하고, 나에게 더 중요한 것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비운 자리에는 새로움을 채울 여백이 생겼고,

나는 그 여백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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