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8세.
어머님께서 긴 생을 마무리하셨다.
올해 초, 집에서 요양하시던 중 작은 낙상 사고가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외상은 없었지만, 그날 이후 어머님은 혼자 일어나지 못하셨다.
곧이어 시작된 가벼운 기침은 폐렴으로 이어졌고,
병원에 입원한 뒤로는 거동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치매 증상도 점점 심해졌다.
결국 가족들은 더는 집에서 모시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고심 끝에 요양병원 입소를 결정했다.
무리한 치료보다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매주, 혹은 며칠에 한 번씩 어머님을 찾아뵈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보려 했지만…
돌아보면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께서 위독하십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님은 산소호흡기를 낀 채
힘겹게 숨을 쉬고 계셨다.
곁엔 맥박과 혈압을 표시하는 기계가 있었고,
나는 자꾸만 그 숫자들만 바라보게 되었다.
수치가 조금만 낮아져도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치가 괜찮아 보여도,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요.”
하루 종일 곁을 지키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병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기로 하고, 일단 각자의 일터로 향했다.
그날은 별다른 연락이 없어
그래도 조금은 괜찮으신가 싶었는데…
다음 날 새벽,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더 거칠어진 숨,
자주 찾아오는 무호흡.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일터로 향할 수 밖에 없었기에,
나는 형님들과 함께 어머님 곁을 지켰다.
삐삐 울리는 경고음.
어느 순간, 어머님이 숨을 쉬지 않는 듯 보였다.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잠시 후 들려온 말.
“어머님, 뇌사 상태이십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도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간호사는 말했다.
“기계 전원을 꺼도 여운이 남듯이,
심장도 완전히 멈추기 전까진 잠시 움직입니다.
희망을 갖는 분들도 있지만… 이제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에요.”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어요.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세요.”
나는 어머님의 얼굴을 만졌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입에서 나온 말은…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세요.”
결혼 전 처음 인사드리던 날,
어머님은 환한 미소보다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어떤 애 길래 우리 아들이 데려왔나.”
그런 눈길이었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생긴 종아리의 흉터.
그날은 예를 갖춘다고 치마를 입었는데,
스타킹 너머로 흉터를 보신 어머님이 하신 말.
“유전되는 거 아니가.”
그 말이 마음 깊이 박혔다.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고부 사이는 결국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결혼 후, 남편의 하던 일이 어려워지며
우리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일을 마무리하고 뒤따라 오기로 했고,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먼저 시댁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다.
이삿짐이 들어오던 날, 비가 왔다.
짐 하나하나가 어머님 눈에는
그저 돈 쓰는 며느리의 흔적으로 보였던 걸까.
아이들 장난감, 책, 가전제품들까지
모두 시선에 걸리는 듯했다.
"아이고~ 이런 거는 뭐하러 샀노?
다 갖다 버리라~"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눈물이 나왔다.
이삿짐을 도와주던 사장님 부부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좋은 날이 올 거예요.”
그 말에 눈물이 더 쏟아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마음은 이미 엉망이었다.
어머님은 늘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분이었다.
그런 인상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표정이 조금씩 부드러워지셨다.
가끔은 나에게도 미소를 보여주시곤 했다.
치매 증상이 시작된 이후엔
“몰라”라는 말을 자주 하시며
멋쩍게 웃으시는 모습도 보였다.
1년 가까이 요양보호사가 다녀간 후부터는
점심 식사를 챙기러 매일 어머님 댁에 들렀다.
비록 긴 대화는 없었지만
자주 마주하게 되면서 마음의 거리도 조금은 좁혀졌던 것 같다.
그러다 어머님의 기력은 점점 쇠해지고,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에 대한 의지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지난날 내 마음을 찔렀던 기억들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무뎌졌다.
남은 건 마음뿐입니다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닐까.’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한 걸까.’
그 질문에는 아직도 망설여진다.
이제는,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저 마음속에서 어머님을 떠올릴 뿐이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야 하겠지.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서툴게 마주하고, 조심스레 관계를 이어왔다.
나는 살가운 며느리는 아니었다.
감정 표현도 어색하고, 다가가는 방법도 몰랐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마음으로 어머님을 기억하는 일뿐이다.
후회한들, 돌이킬 수는 없으니까.
어머님,
모나고 부족한 며느리였지만
혹시라도 좋았던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걸 품고,
따뜻하고 평안한 곳으로 가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