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아서 할게.”
아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짧고 단단하다. 그 말 한마디면 대화는 거기서 멈춘다.
분명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인데,
조심스럽게 묻거나 알려주려 하면
그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그 말이 왜 이렇게 서운할까.
관심이어서, 걱정이어서 꺼낸 말인데
아들은 마치 문을 닫듯 그 말을 던진다.
괜히 입술을 깨문다.
싸우지 않기 위해서다.
나도 모르게 말이 냉담해질까 봐.
그런데도 문득, 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내가 붙잡을 수가 없다.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 말한 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 자꾸만 쌓여간다.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으로 야자를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데리러 갈 수 없다.
그래서 버스 이야기를 하려 했다.
몇 번이 학교 쪽으로 가는지,
몇 시에 오는지,
혹시 늦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데 또 그 말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
“엄마가 말하는 게 싫어?
난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알았어. 네가 알아서 해.”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내 말투가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곧바로 버스 위치를 검색했다.
아들이 타려고 했던 버스는
학교 방향이 아니었다.
몇 번은 몇 분 후 도착 예정이고,
몇 번은 학교 쪽으로 가지 않는다고
카톡을 보냈다.
답장은 짧았다.
“알았어.”
그 아이도 아마
자신이 조금은 서툴렀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밤 10시가 가까워오는 시간.
혹시라도 버스를 잘못 타면 어쩌나.
내릴 곳을 지나치면 어쩌나.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참다못해 전화를 걸었다.
“버스 탔어?”
“엘리베이터야.”
그리고 곧 들리는 현관문 소리.
“다녀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조여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나는 최대한 절제된 말투로 묻는다.
“그 버스 탔어?”
“응.”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끝이다.
아들은 자라고 있다.
나는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자주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차단된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내 감정을 절제하고
차분히 대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남편은 말한다.
“아들이 그렇게 차갑게 말하면
손이 올라갈 것 같아.”
그래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한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철컥, 하고 내려앉았다.
사춘기 아들과 아빠의 거리.
그 사이를 내가 잘 중재해야 할 텐데.
그런데 정작
나조차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무슨 자격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은
어쩌면 나를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서보겠다는 선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직
조금 더 말해주고 싶고
조금 더 챙겨주고 싶다.
엄마의 걱정은
아들이 자라는 속도보다
항상 반 박자 느리게 멈춘다.
믿어주고 싶으면서도
끝내 다 놓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내 감정을 키우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