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 사용법

by 작은 발자국

아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많지 않다.

말을 걸면 단답형으로 끝나기 일쑤고, 대답을 피하거나 같은 말을 두 번 하면 금세 짜증을 낸다. 그렇게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감정이 상하는 일은 오히려 더 잦아졌다.

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은 더 조용해졌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진 나를 걱정했는지, 딸은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랑 얘기 좀 많이 해. 함부로 대하지도 말고.

그러다 엄마한테 막 하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하지만 이 말에 흔들릴 아들이 아니다.

여전히 집은 적막하고, 대화할 시간도, 대화할 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됐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생활. 어느 날, 수업이 끝났다는 전화가 왔다.


그때 내가 먼저 건넸어야 할 말은

“고생했어. 힘들었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전화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 용건부터 꺼내버렸다.


순간, 아들이 버럭 화를 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나는 곧바로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들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집에 갈게.”


그날 이후 알게 되었다.

아들은 해결책이 아니라, 인정과 위로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하루가 힘들었다는 걸,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아들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같은 말을 건넨다.


“수고했어. 힘들었지. 조심히 와.”


짧은 말이지만, 그 한마디에 아들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진다.

“응, 집에 갈게.”


우리는 여전히 짧게 말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달라졌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한 가지를 바꾸었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먼저 묻지 않는다.

아들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린다.

모른 척, 궁금하지 않은 척.


하지만 아들이 입을 열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집중한다.

과하지 않게, 그러나 충분히 느껴질 만큼의 반응으로

공감하고, 응원하고, 칭찬한다.


비난이나 호통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우리 서로 잘 지내보자.”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들의 대답은 짧았다.

“엄마 말투부터 바꿔.”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돌이켜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말투가 부드러운 편이 아니었고,

특히 아들에게는 더 강하게 말해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노력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기.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기.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아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되,

부모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

과한 관심 대신, 꾸준한 지지.


그랬더니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횟수가 늘었고,

말투도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사춘기의 아이는

간섭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지지에는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아들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그리고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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